일기

강아지똥

narre 2005. 9. 17. 10:16



표가 없어 꽤 길게 잡고 내려온 추석 연휴.

낮엔 가족들이 모두 외출하기 때문에,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생각도 하고 거실을 뒹굴뒹굴 굴러다니려 했건만, 이 모든 행복한 상상들은 강아지 한 녀석 때문에 물거품이 되었다.

'아리따' 라던가. 이름은 촌시럽지만 어무이에게 셋째로서의 사랑을 톡톡히 받고 있는 이 넘은, 태어난지 몇 개월 되지 않은 암컷 푸들이다. 재롱도 잘 부리고, 눈치도 빠르고, 사람 좋아하고, 나름 훈련도 잘 되어 있고... 진정 하나만 빼면 완벽한 녀석이다.
근데 그 하나가 내겐 전부와도 같은 위력을 지녔으니, 바...바로 아직 변 볼 장소를 못 가리는 것.

집에 사람이 없다는 낌새만 들면, 이곳저곳에 지뢰구덩이를 만드는데, 직업군인도 아닌 것이 어찌 그리 설치속도가 빠른지. 덕분에 나는 이 황금같은 연휴동안 강아지 똥.... 을 처리하고 있는 신세가 되어부렀다. 두루마리 화장지와 세제를 양손에 들고 이 넘의 뒷처리를 하고 있노라면,  정녕 누가 누구를 기르는 것인지 헷갈리기만 하다.(변도 못가리는게 아니라 안 가리는 것 같다-_-)  게다가 이 넘은 설치속도 뿐 아니라 후퇴속도 역시 재빨라서 내가 지뢰를 발견하고 소리라도 지르려 하면 금새 쪼르르 달려가 제 참호 속으로 숨어 버린다. 통탄할 노릇이다.

그래서 추석 직전까지 나의 직업은, 강아지 시중 담당 +  컴퓨터 a/s 기사.

휴가가 아니라 출장 알바. 보수는 오로지 먹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