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결막염
narre
2006. 8. 12. 12:42
눈이 아파서 안과에 갔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손님이 많아서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했다.
대부분 꼬맹이 손님이었는데 엄마 손을 붙잡고 시력검사를 하러 온 듯했다. 십 년 사이에 안경 낀 아이들이 많이 는 것 같다. 의학은 진보하고, 육체는 퇴화하고 있는걸까. 아니면 육체가 그냥 도시환경에 맞춰서 적응을 한 결과가 시력의 쇠퇴인걸까. 어쩌면 라식이니 렌즈니 안경이니 하는 것들이 쏟아져나오자, 참다못한 시력이 그만 토라져버린 건지도 모른다.
대기실에서 GEO란 잡지를 봤다. 몇 년전에 가끔 봤던 기억이 나는데, 상당히 괜찮은 잡지였다. 네셔널 지오그래픽과 유사하면서 좀 더 인간적이고 생생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국판도 많은 작업을 외국사진가들과 하는 것 같고, 사진들은 대부분 훌륭했다. 자기 생활에 갇히기 쉬운 직장생활에서 생각을 넓히기에 좋은 잡지란 생각에, 정기구독을 신청해볼까하고 집에돌아와 찾아보았더니 2005년에 폐간했댄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했을 듯하다.
중학교때 (오직 남녀관계와 가정의 흥망성쇠로 가득한)세상에 대해 알게 해주었던 엄마의 여성중앙, 고등학교때 동생 보라며 아버지가 종종 회사에서 가져다준 (전국맛집과 남자 꼬시는 법에 대해 알려주던) 쎄시 이후론, 평소에 잡지라곤 한 권도 읽지 않는 생활을 계속해왔는데, geo 같은 유형의 잡지가 또 있다면 한 권쯤 정기구독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인터넷에서 요구하는 검색의 능동성과 전기가 없으면 사용할 수 없는 디지털 정보의 불편함이 귀찮아질 때가 종종 있으니까.
병명은 결막염이었다.
생소한 함경도 억약을 구사하는 의사 아주머니는 무표정한 얼굴로, 렌즈 삽입을 자제하고 옵티푸로점안액을 하루에 네 번씩 떨어뜨려 주라고 명했다. 안약은 어제부터 사용하고 있었고, 병명은 예상했던 것이었지만, 판사의 판결처럼 최종결론이 난 듯한 후련함에 만족하기로 했다. 뜨뜻한 불빛을 이 분간 쪼이고 진료실을 나서니, 대기실의 풍경이 채도가 30쯤 떨어진 모습으로 펼쳐졌다.
동물병원 앞을 지나는데, 죽돌이 시츄가 바깥 구경을 하고 있다.
며칠전엔 동물병원 문 앞의 지하철 출구 앞에, 다리가 불편하신 할아버지가 자신의 애완견인 시츄와 함께 신문지 한 장씩을 각자 깔고 앉아 볕을 피하고 있었다. 동물병원의 시츄가 할아버지의 시츄를 바라보는데, 감정을 읽을 수 없지만 강렬한 강도만은 읽을 수 있는 눈빛이었다. 나는 문득 사진을 찍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길을 걷다가 그런 생각을 한 것은 꽤 오랜만이어서 조금 놀랐다. 하지만 사진기가 없었고, 사진기가 있더라도 그것을 담아낼만한 적당한 렌즈가 떠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초광곽으로만 담을 수 있는 정도의 거리였는데, 아마 그렇게 담는다면 시츄가 병아리처럼 조그많게 나와서 눈빛 같은 것은 잘못 묻은 먼지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에잇, 하면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소시적 꾸다만 사진가의 꿈이 무럭무럭 피어오른다.
나이가 든다는 건, 잘은 모르겠지만,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어떤 운이 있어야 하며, 어떤 것들을 기회비용으로 생각해야하는지 더 정확히 알게 된다는 것 아닐까 싶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손님이 많아서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했다.
대부분 꼬맹이 손님이었는데 엄마 손을 붙잡고 시력검사를 하러 온 듯했다. 십 년 사이에 안경 낀 아이들이 많이 는 것 같다. 의학은 진보하고, 육체는 퇴화하고 있는걸까. 아니면 육체가 그냥 도시환경에 맞춰서 적응을 한 결과가 시력의 쇠퇴인걸까. 어쩌면 라식이니 렌즈니 안경이니 하는 것들이 쏟아져나오자, 참다못한 시력이 그만 토라져버린 건지도 모른다.
대기실에서 GEO란 잡지를 봤다. 몇 년전에 가끔 봤던 기억이 나는데, 상당히 괜찮은 잡지였다. 네셔널 지오그래픽과 유사하면서 좀 더 인간적이고 생생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국판도 많은 작업을 외국사진가들과 하는 것 같고, 사진들은 대부분 훌륭했다. 자기 생활에 갇히기 쉬운 직장생활에서 생각을 넓히기에 좋은 잡지란 생각에, 정기구독을 신청해볼까하고 집에돌아와 찾아보았더니 2005년에 폐간했댄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했을 듯하다.
중학교때 (오직 남녀관계와 가정의 흥망성쇠로 가득한)세상에 대해 알게 해주었던 엄마의 여성중앙, 고등학교때 동생 보라며 아버지가 종종 회사에서 가져다준 (전국맛집과 남자 꼬시는 법에 대해 알려주던) 쎄시 이후론, 평소에 잡지라곤 한 권도 읽지 않는 생활을 계속해왔는데, geo 같은 유형의 잡지가 또 있다면 한 권쯤 정기구독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인터넷에서 요구하는 검색의 능동성과 전기가 없으면 사용할 수 없는 디지털 정보의 불편함이 귀찮아질 때가 종종 있으니까.
병명은 결막염이었다.
생소한 함경도 억약을 구사하는 의사 아주머니는 무표정한 얼굴로, 렌즈 삽입을 자제하고 옵티푸로점안액을 하루에 네 번씩 떨어뜨려 주라고 명했다. 안약은 어제부터 사용하고 있었고, 병명은 예상했던 것이었지만, 판사의 판결처럼 최종결론이 난 듯한 후련함에 만족하기로 했다. 뜨뜻한 불빛을 이 분간 쪼이고 진료실을 나서니, 대기실의 풍경이 채도가 30쯤 떨어진 모습으로 펼쳐졌다.
동물병원 앞을 지나는데, 죽돌이 시츄가 바깥 구경을 하고 있다.
며칠전엔 동물병원 문 앞의 지하철 출구 앞에, 다리가 불편하신 할아버지가 자신의 애완견인 시츄와 함께 신문지 한 장씩을 각자 깔고 앉아 볕을 피하고 있었다. 동물병원의 시츄가 할아버지의 시츄를 바라보는데, 감정을 읽을 수 없지만 강렬한 강도만은 읽을 수 있는 눈빛이었다. 나는 문득 사진을 찍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길을 걷다가 그런 생각을 한 것은 꽤 오랜만이어서 조금 놀랐다. 하지만 사진기가 없었고, 사진기가 있더라도 그것을 담아낼만한 적당한 렌즈가 떠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초광곽으로만 담을 수 있는 정도의 거리였는데, 아마 그렇게 담는다면 시츄가 병아리처럼 조그많게 나와서 눈빛 같은 것은 잘못 묻은 먼지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에잇, 하면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소시적 꾸다만 사진가의 꿈이 무럭무럭 피어오른다.
나이가 든다는 건, 잘은 모르겠지만,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어떤 운이 있어야 하며, 어떤 것들을 기회비용으로 생각해야하는지 더 정확히 알게 된다는 것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