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고래
narre
2005. 1. 12. 16:01
고래에 관한 사진을 봤다.
사실 고래의 사진이라기보단 고래가 페인트로 그려진 낡은 벽화를 찍은 사진이었다. 한 쪽엔 '참고래' '체장 19-25m'라는 글이 적혀있었고, 그림이 그려진지 아주 오래된 듯 페인트가 반쯤은 벗겨져 있었다. 페인트의 부스럼과 세월의 때가 섞여 거뭇하게 변한 그 자리는 고래 밑에 그려진 수초와 썩 잘 어울려서, 고래는 중세의 배가 침몰해 있는 아주 깊은 대양을 유영하는 듯했다. 빛이 없기에 시간도 없는 심해를 소리마저 없이 헤엄치는 거대한 생물. 시각도 청각도 마비된 그곳에는 오로지 촉각적인 존재감만 있다. 희미하지만 커다란 그 감각, 오로지 유일하게 존재하는 그 감각은 차라리 아픔이다. 한 점을 콕콕 찔러오는 송곳의 아픔이 아닌 온 몸을 서서히 감싸오는 해파리 같은 아픔.
문득 하나의 빛이 나타났다. 고래가 눈을 떴다.고래의 움직임을 따라 서서히 이동하는 그 빛은 절반이 어둠이었고 그만큼 슬퍼보였다. 그것은 태양이라기보단 달과 닮아 있었다. 그 눈은 공간을 매우는 유일하게 시각적인 무엇이었지만 묘하게 시각적이지 않은 구석이 있었다. 시간이 정지한 공간을 서서히 이동하는 작은 빛의 움직임이 시계 추처럼 태초를 떠올리게 했다. 나는 내가 오래전에 존재했던 그곳을 상상했다. 아니, 상상했다기보단 느꼈다.
예전에 모비딕을 읽은 기억이 났다. 오랜전이라 줄거리도 잘 기억이 나질 않지만, 고래를 묘사하는 대목이 나올때마다 왠지 모르게 설레였던 기억이 있다. 소설을 다 읽은 나는 아버지를 졸라 '바다에 사는 생물들'이란 그림책을 샀다. 그리고 그 책에서 세상에서 가장 긴 고래라는 흰긴수염고래를 발견했을 때, 나는 온몸을 가득 채우는 벅찬 설레임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넓고 깊은 바다를 헤엄치는 35m의 흰긴수염고래는 어린 내게 태초의 바다가 주는 기분좋은 편안함, 정적, 따뜻함을 의미했다. 어떤 날은 7살 때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떠올리기도 했다. 지금도 나는 모비딕이라는 단어를 소리내어 천천히 발음할 때 마다 유년기의 설레임이 남긴 흔적을 느낀다. 모. 비. 딕.
다시 사진을 보니 고래가 그려진 그림 뒤로 사람들이 사는 도시가 보인다. 처음엔 보지 못했던 풍경이다. 태풍이 오기 전인 듯 가득 드리워진 먹구름이 빽빽한 건물들 위를 덮고 있다. 곧 비가 올 것 같다.
나는 이 우울한 도시 앞의 낡은 고래 그림처럼, 오래되어 방기된 그래서 반쯤은 페인트칠이 벗겨진 기억들이 내게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새삼 놀란다.
사실 고래의 사진이라기보단 고래가 페인트로 그려진 낡은 벽화를 찍은 사진이었다. 한 쪽엔 '참고래' '체장 19-25m'라는 글이 적혀있었고, 그림이 그려진지 아주 오래된 듯 페인트가 반쯤은 벗겨져 있었다. 페인트의 부스럼과 세월의 때가 섞여 거뭇하게 변한 그 자리는 고래 밑에 그려진 수초와 썩 잘 어울려서, 고래는 중세의 배가 침몰해 있는 아주 깊은 대양을 유영하는 듯했다. 빛이 없기에 시간도 없는 심해를 소리마저 없이 헤엄치는 거대한 생물. 시각도 청각도 마비된 그곳에는 오로지 촉각적인 존재감만 있다. 희미하지만 커다란 그 감각, 오로지 유일하게 존재하는 그 감각은 차라리 아픔이다. 한 점을 콕콕 찔러오는 송곳의 아픔이 아닌 온 몸을 서서히 감싸오는 해파리 같은 아픔.
문득 하나의 빛이 나타났다. 고래가 눈을 떴다.고래의 움직임을 따라 서서히 이동하는 그 빛은 절반이 어둠이었고 그만큼 슬퍼보였다. 그것은 태양이라기보단 달과 닮아 있었다. 그 눈은 공간을 매우는 유일하게 시각적인 무엇이었지만 묘하게 시각적이지 않은 구석이 있었다. 시간이 정지한 공간을 서서히 이동하는 작은 빛의 움직임이 시계 추처럼 태초를 떠올리게 했다. 나는 내가 오래전에 존재했던 그곳을 상상했다. 아니, 상상했다기보단 느꼈다.
예전에 모비딕을 읽은 기억이 났다. 오랜전이라 줄거리도 잘 기억이 나질 않지만, 고래를 묘사하는 대목이 나올때마다 왠지 모르게 설레였던 기억이 있다. 소설을 다 읽은 나는 아버지를 졸라 '바다에 사는 생물들'이란 그림책을 샀다. 그리고 그 책에서 세상에서 가장 긴 고래라는 흰긴수염고래를 발견했을 때, 나는 온몸을 가득 채우는 벅찬 설레임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넓고 깊은 바다를 헤엄치는 35m의 흰긴수염고래는 어린 내게 태초의 바다가 주는 기분좋은 편안함, 정적, 따뜻함을 의미했다. 어떤 날은 7살 때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떠올리기도 했다. 지금도 나는 모비딕이라는 단어를 소리내어 천천히 발음할 때 마다 유년기의 설레임이 남긴 흔적을 느낀다. 모. 비. 딕.
다시 사진을 보니 고래가 그려진 그림 뒤로 사람들이 사는 도시가 보인다. 처음엔 보지 못했던 풍경이다. 태풍이 오기 전인 듯 가득 드리워진 먹구름이 빽빽한 건물들 위를 덮고 있다. 곧 비가 올 것 같다.
나는 이 우울한 도시 앞의 낡은 고래 그림처럼, 오래되어 방기된 그래서 반쯤은 페인트칠이 벗겨진 기억들이 내게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새삼 놀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