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공주와 미로
narre
2006. 2. 11. 12:27
아주 먼 옛날, 공주가 하나 살았다.
항상 눈웃음을 머금고, 친절하고 싹싹하여 이쁨을 많이 받는 공주였는데.
개인적으로 친분이 쌓이면, 곧잘 '넌 마음을 열지 않아' 류의 소리를 듣곤했다.
항상 깔끔하고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만 보이려고 한다던지,
자의식에 둘러쌓여서 그걸 놓지 못한다던지,
상대가 듣기 편하게 포장된 것만 보이고 날 것을 보이지 못한다던지, 하는...
본질적으로는 비슷한 이야기를 공주는 살아오면서 꽤 많이 들어왔다.
더 마음을 연다는게 과연 공주 안의 어떤 부분을 드러낸다는건지는, 실은 공주도 잘 몰랐지만, '무언가 남들에게 내쳐지지 않을 선에서 자신을 드러낸다는건 맞는 것 같아.' 라고 공주는 생각했다.
그동안은 그리 불편한 거 없이 잘 살아왔지만, 왠지 그렇게 생각하고나자
문득, 외롭다고 느끼게 되었다.
이어지는 질문.
그럼 나는 왜 그럴까.
공주는 아래와 같이 길고 긴 생각을 했다.
'생각해보면 나야 말로 주고받음에 대한 계산이 철저한 것 아닐까.
상대를 이해하고, 상대에 대해 무언가 도움을 주는 건 그만큼, 아니 그 이상의 무언가가 나에게 돌아온다는 믿음이 있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해 조금씩 더 알아가고 이해하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세상엔 잘 없잖아. 그리고 '나는 당신을 이해하고 싶고, 조금쯤은 이해하고 있어요'라는게 상대에게 전해졌을때, 상대 역시 그만한 따뜻함과 유대를 나에게 표현해주니까, 그런 유대를 통해 나는 당신과, 세상과 이어져 있다다는 느낌을 받고, 조금쯤은 안심을 하게 되는거야.
하지만 나를 열고 서슴이 없을때, 그것이 이해받을 수 있단 믿음은 없어.
그리고 이해받지 않았을때, 상처받지 않을 수 있는 대범함도 없고.
그런 조건에서 나를 노출하는건 너무 위험한 도박 아닐까.
엄청 소심해서는, 무언가 내 안의 이야기를 할 때 조금이라도 주의깊게 듣고 있지 않단 느낌을 받으면(정말 사소한 표정과 손의 떨림, 동작에서 드러나는) 나는 금새 입과 마음을 다물고 마는걸.'
(그렇다. 공주는 A형이었다.)
공주는 은거에 들어갔다. 깊고깊은 숲 속에 높은 성을 세우고, 험난하고 복잡한 미로를 만들어두고 용을 베었다는 용맹한 백마탄 왕자님이 와서 뽀뽀로 자신을 깨워줄 것을 기대하며 깊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미인은 잠꾸러기, 라고 어릴때부터 어마마마께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미로는 모험가를 헤메어 죽게하기 위한 미로가 아니다.
공주는 간절히 그가 미로를 넘어 공주에게 오길 바랬다.
그래서 군데군데 힌트까지 숨겨두고, 길을 잘못 들 때마다 은근슬쩍 미로를 변형해 공주에게 인도하기도 했다.
활발하고 친절한 공주는 단지 모험가에게 그만큼의 용기와 의지가 있음을 확인하고 싶은 것 뿐이었다.
사람들 대부분은 그렇게까지해서 남을 이해하고 싶어하지도 않고, 그만한 에너지를 쏟을 여력도 없거든.
다들 바쁘니까.
공주는 그런 바쁜 사람들, 그렇지만 약간의 호기심만 있을 뿐 전혀 의지는 없는 사람들을 걸러내고 싶은 것 뿐이었다.
하지만 백년이 지나고, 천년이 지나도 왕자는 오지 않았다.
공주는 생각했다.
어쩌면 외로움이란 성에 고립된 대부분의 인간들이 이런 방어적이고 수동적인 미로를 마련해 두고 있을거야.
백마탄 왕자님을 기다리며, 노력은 하지 않은채 그저 외로운 세월을 견뎌낼 뿐인거지.
하지만 세상에 백마탄 왕자님은 없더군. (물론 귀납법에서 오는 오류다. 일년이 지나도, 이년이 지나도 오지 않는다. 백년이 지나도 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왕자는 없다. 하지만 귀납법은 예측기간을 제한하면 유용한 의미를 얻는다. 인간의 유한함이 귀납법에 실용성을 부여한다.)
게다가 자도자도 끝이없는 잠은 죽은거나 다름없자나.
미인은 잠꾸러기도 봐줄 사람이 있어야 소용있지.
답답해진 공주는 잠에서 깨어나 미로를 다시 설계하기 시작했다.
B.C 237년에 아르켜주마데스가 발견했다는 '상호동량에너지 소모법칙'을 적용시켜서, 모험가가 헤메고 방황하는데 에너지를 쏟는만큼, 공주 역시 그에게 다가가기 위해 같은 에너지를 쏟게 되어있는 미로를 만든거지.
소심한 공주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라고나 할까.
그니까 공주 역시 미로의 한 구석에 있는거다.
미로의 모든 벽은 거울로 되어 있어서, 지금 헤메고 있는 상대를 비춘다. 하지만 상대가 어디 있는지는 모르지. 다만 아주 약간의 단서는 있고, 그걸 움켜쥐고 가는거지.
서로가 서로를 찾아 헤메는 미로.
바로 곁에서 볼 순 있지만 말하거나 만질 수 없는 미로.
그럼 천신만고 끝에 서로가 만나면?
그 순간 거울은 깨어지고 미로는 파괴될까?
아님, 그 둘은 이제 함께 미로에 갇히는걸까.
그건 공주도 알 수 없었다.
미로는 공주의 소심함이 만들어낸 실체적 환영.
롱기누스의 창으로 깨어지길 바라는 AT field.
공주가 잠에서 깨어나 미로로 뛰어든 순간, 미로는 이미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을지도.
서로가 만나 엔딩의 키스를 날리는 순간, 섬광처럼 빛이 쏟아지며 미로가 촤라락 무너져 내릴지도. 키스하는 순간 원위치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는 보글보글처럼 엔딩없는 게임이었을지도. 아님 바로 그 자리에서 영원히 둘 만 미로에 고립될지도.
4가지 엔딩을 마련해놓은 미스테리 어드벤쳐 다큐멘터리물.
잠자는 숲속의 공주, 미로로 뛰어들다.
기대하시라. 2006년 2월 개봉.
항상 눈웃음을 머금고, 친절하고 싹싹하여 이쁨을 많이 받는 공주였는데.
개인적으로 친분이 쌓이면, 곧잘 '넌 마음을 열지 않아' 류의 소리를 듣곤했다.
항상 깔끔하고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만 보이려고 한다던지,
자의식에 둘러쌓여서 그걸 놓지 못한다던지,
상대가 듣기 편하게 포장된 것만 보이고 날 것을 보이지 못한다던지, 하는...
본질적으로는 비슷한 이야기를 공주는 살아오면서 꽤 많이 들어왔다.
더 마음을 연다는게 과연 공주 안의 어떤 부분을 드러낸다는건지는, 실은 공주도 잘 몰랐지만, '무언가 남들에게 내쳐지지 않을 선에서 자신을 드러낸다는건 맞는 것 같아.' 라고 공주는 생각했다.
그동안은 그리 불편한 거 없이 잘 살아왔지만, 왠지 그렇게 생각하고나자
문득, 외롭다고 느끼게 되었다.
이어지는 질문.
그럼 나는 왜 그럴까.
공주는 아래와 같이 길고 긴 생각을 했다.
'생각해보면 나야 말로 주고받음에 대한 계산이 철저한 것 아닐까.
상대를 이해하고, 상대에 대해 무언가 도움을 주는 건 그만큼, 아니 그 이상의 무언가가 나에게 돌아온다는 믿음이 있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해 조금씩 더 알아가고 이해하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세상엔 잘 없잖아. 그리고 '나는 당신을 이해하고 싶고, 조금쯤은 이해하고 있어요'라는게 상대에게 전해졌을때, 상대 역시 그만한 따뜻함과 유대를 나에게 표현해주니까, 그런 유대를 통해 나는 당신과, 세상과 이어져 있다다는 느낌을 받고, 조금쯤은 안심을 하게 되는거야.
하지만 나를 열고 서슴이 없을때, 그것이 이해받을 수 있단 믿음은 없어.
그리고 이해받지 않았을때, 상처받지 않을 수 있는 대범함도 없고.
그런 조건에서 나를 노출하는건 너무 위험한 도박 아닐까.
엄청 소심해서는, 무언가 내 안의 이야기를 할 때 조금이라도 주의깊게 듣고 있지 않단 느낌을 받으면(정말 사소한 표정과 손의 떨림, 동작에서 드러나는) 나는 금새 입과 마음을 다물고 마는걸.'
(그렇다. 공주는 A형이었다.)
공주는 은거에 들어갔다. 깊고깊은 숲 속에 높은 성을 세우고, 험난하고 복잡한 미로를 만들어두고 용을 베었다는 용맹한 백마탄 왕자님이 와서 뽀뽀로 자신을 깨워줄 것을 기대하며 깊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미인은 잠꾸러기, 라고 어릴때부터 어마마마께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미로는 모험가를 헤메어 죽게하기 위한 미로가 아니다.
공주는 간절히 그가 미로를 넘어 공주에게 오길 바랬다.
그래서 군데군데 힌트까지 숨겨두고, 길을 잘못 들 때마다 은근슬쩍 미로를 변형해 공주에게 인도하기도 했다.
활발하고 친절한 공주는 단지 모험가에게 그만큼의 용기와 의지가 있음을 확인하고 싶은 것 뿐이었다.
사람들 대부분은 그렇게까지해서 남을 이해하고 싶어하지도 않고, 그만한 에너지를 쏟을 여력도 없거든.
다들 바쁘니까.
공주는 그런 바쁜 사람들, 그렇지만 약간의 호기심만 있을 뿐 전혀 의지는 없는 사람들을 걸러내고 싶은 것 뿐이었다.
하지만 백년이 지나고, 천년이 지나도 왕자는 오지 않았다.
공주는 생각했다.
어쩌면 외로움이란 성에 고립된 대부분의 인간들이 이런 방어적이고 수동적인 미로를 마련해 두고 있을거야.
백마탄 왕자님을 기다리며, 노력은 하지 않은채 그저 외로운 세월을 견뎌낼 뿐인거지.
하지만 세상에 백마탄 왕자님은 없더군. (물론 귀납법에서 오는 오류다. 일년이 지나도, 이년이 지나도 오지 않는다. 백년이 지나도 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왕자는 없다. 하지만 귀납법은 예측기간을 제한하면 유용한 의미를 얻는다. 인간의 유한함이 귀납법에 실용성을 부여한다.)
게다가 자도자도 끝이없는 잠은 죽은거나 다름없자나.
미인은 잠꾸러기도 봐줄 사람이 있어야 소용있지.
답답해진 공주는 잠에서 깨어나 미로를 다시 설계하기 시작했다.
B.C 237년에 아르켜주마데스가 발견했다는 '상호동량에너지 소모법칙'을 적용시켜서, 모험가가 헤메고 방황하는데 에너지를 쏟는만큼, 공주 역시 그에게 다가가기 위해 같은 에너지를 쏟게 되어있는 미로를 만든거지.
소심한 공주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라고나 할까.
그니까 공주 역시 미로의 한 구석에 있는거다.
미로의 모든 벽은 거울로 되어 있어서, 지금 헤메고 있는 상대를 비춘다. 하지만 상대가 어디 있는지는 모르지. 다만 아주 약간의 단서는 있고, 그걸 움켜쥐고 가는거지.
서로가 서로를 찾아 헤메는 미로.
바로 곁에서 볼 순 있지만 말하거나 만질 수 없는 미로.
그럼 천신만고 끝에 서로가 만나면?
그 순간 거울은 깨어지고 미로는 파괴될까?
아님, 그 둘은 이제 함께 미로에 갇히는걸까.
그건 공주도 알 수 없었다.
미로는 공주의 소심함이 만들어낸 실체적 환영.
롱기누스의 창으로 깨어지길 바라는 AT field.
공주가 잠에서 깨어나 미로로 뛰어든 순간, 미로는 이미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을지도.
서로가 만나 엔딩의 키스를 날리는 순간, 섬광처럼 빛이 쏟아지며 미로가 촤라락 무너져 내릴지도. 키스하는 순간 원위치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는 보글보글처럼 엔딩없는 게임이었을지도. 아님 바로 그 자리에서 영원히 둘 만 미로에 고립될지도.
4가지 엔딩을 마련해놓은 미스테리 어드벤쳐 다큐멘터리물.
잠자는 숲속의 공주, 미로로 뛰어들다.
기대하시라. 2006년 2월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