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그 아파트

narre 2005. 6. 15. 17:21
언제 부턴가 꿈에 종종 등장하곤 하던 장소.
비탈진 아스팔트길을 마당으로 둔 키 작은 아파트 단지.
하도 맥락없이 등장하는 장소라, 번번히 내가 왜 거기 있었나 갸우뚱 거렸던 그 곳.

알고보니 어릴 때 살았던 아파트였다.

팔이 부러진 곳. 처음으로 코피가 난 곳. 고무 따먹기를 한 곳. 차빵고빵진빵 삼총사가 살던 곳. 두 층짜리 놀이터가 있어 돌 던지며 놀던 곳. 진돌을 한 곳. 술래잡기 한 곳.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한 곳. 얼음물 한 곳. 땅따먹기 한 곳. 1층에 살던 친한 여자아이가 속옷만 입고 집에서 쫓겨난 곳. 1학년 때 "엄마, 나 '미'받았어요"라고 백미터 밖에서 자랑스럽게 외쳐서 엄마 쪽 판 곳. 인사 잘해서 아줌마들이 좋아했던 곳. 골목대장 명현이형이 살던 곳. 재믹스 게임기가 있던 곳. 50원짜리 깐돌이 하나 입에 물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던 곳.

꿈 속에서 나는 당시 그 장소에 가졌던 느낌을, 그곳이 바로 그 장소라는 사실만 쏙 빼먹은채 명확하게 가지고 있었다.
뒤엉킨 시간성에 잠에서 깬 후에도 얼마간 주변을 인지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