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꿈과 미팅

narre 2006. 4. 28. 13:26
어제 꿈엔 기생충이 지구를 습격했다. 사람들 몸을 숙주로 삼아서 그 몸을 조종해 다른 사람들에게 다시 옮겨가는 기생충이었다. 겉에서 봐서는 기생충이 조종하는 사람인지 티가 나지 않는데, 가까이 접근해서는 배설하는 것처럼 기생충을 쏘아내서 몸 안에 쑥 들어가는 방식이었다. 난 유일하게 기생충이 들어있는 사람인지 여부를 판별할 수 있는 사람이어서, 선명한 붉은색 치마를 입고 인류를 위기에서 구해내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그러다 책사러 가야한다는 미나를 꼬셔서 만화방에도 가고, 만화방에서 기생충 때문에 난리가 나고, 갑자기 장면이 바뀌어서 예의 붉은 치마를 입고 축구를 하더니 갑자기 선수들 내에 숨어있던 기생충 감염자가 폭주하기 시작해서 혼란이 일어나기도 하고...
에고, 꿈에서 하도 돌아댕겼더니 피곤하다. 역시 인류를 구하는건 쉬운일이 아닌가보다.

선생님과 열시에 미팅인데 아홉시 오십분까지 잠자리에서 뒤척이고 있었다. 갑자기 전화 한 통이 걸려와서 발신자를 보니 선생님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경건한 자세로 앉아 목소리를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 그랬더니, 아니 글쎄 선생님께서 조찬회의를 갔다가 좀 늦으신다는 것 아닌가. 역시 나는 논문신이 돕는구나, 라고 하며 '아, 괜찮습니다. 천천히 오십시오'라고 너무도 뻔뻔하게 (마치 연구실인 것처럼) 대답을 했다. (아, 나이들며 능청스러움만 는다.)

그리고 부랴부랴 챙겨서 연구실 도착. 책상에 가방을 던져넣고 자리에 앉는데, 선생님께서 막 도착하셨다고 전화를 하시네. 같은 마을버스 타고 올라왔음 우짤뻔 했노, 라고 안도하며 이 완벽한 타이밍은 역시 운명인걸까나, 라고 흐뭇하게 웃음지었다. 유유히 미팅을 마치고 돌아오니, 이 어찌 기쁘지 않을쏘냐.

논문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일 뿐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깊이 새겨듣는다.
특히 이번 논문은 아직 연구가 거의 되어있지 않은 부분인만큼, 다른 사람들이 딛고 갈 수 있는 징검다리의 돌 중 하나라면 만족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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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하루키 신간 <도쿄기담집>을 샀다.
(<어둠의 저편>부터 임홍빈씨가 계속 번역하네. 김난주씨 번역이 난 좋은디. 쩝)
어느새 하루키 책은, 사는 행위 자체에서도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이 되어가고 있다.
(쿤데라의 책이나, 몇가지 사진기를 사는 행위가 그러한 것처럼)
물론 읽는 행위는 더할 나위 없이 즐겁고 설레는 일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가 중에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는 사실은, 신간을 기다리는 설렘이 있음으로인해 무척이나 복받은 일이란 생각이 든다.

오히려 모든 책이 다 나와버린 작가의 책은, 비록 좋아하는 마음이 클지라도 선뜻 손이 가지 않을 때가 있다. 사려면 다 사야할 것 같은데, 그럼 왠지 재미가 없고, 그렇다고 따끈따끈한 신간을 한 권씩 모아가는 재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때 땡기는 대로, 고민이 흘러가는 대로 한 권씩 사는 방법 말곤 좋은 방법을 모르니까. 어쩐지 책을 사는 행위가 조금은 심심한 기분이 된다. 물론, 구하기 어려운 책들이 있어서 또다른 재미를 주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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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음악을 몇 개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