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논문의 탄생

narre 2006. 8. 1. 20:35


조금은 기운을 차린 것도 같다. 어쩌다 백사장까지 떠밀려온 미역처럼 축 늘어져서 점차 말라가고 있는 중이었다. 책을 조금 읽고, 줄창 영화를 보고, 그것보다 좀 더 자주 축구게임을 했다. 그 사이에 최종논문제출 마감이 다 되어가고, 회사의 입사원서 재촉전화가 걸려오고, 세상은 마구마구 굴러가고 있었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는 굉장히 낯선 글쓰기 양식이라서, 평소에 쓰는 것처럼 주저리주저리 썼다가 검사를 해 준 회사원 친구에게 티박을 먹었다. 격식을 갖추어서 쓰라는 말에, 응, 이라고 흔쾌히 답했지만 사실은 고치지 않고 그냥 내버렸다.

나를 홍보하고 평가받는 것에 이렇게 익숙지 않은건, 아마도 너무도 곱게 살아온 탓인지도 모르겠다. 낮은 영어점수와(영어성적의 유통기한이 2년이란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성의없는 자기소개서, 별다를 것 없는 경력에도 불구하고 입사가 가능하다면, 건 오로지 학력 때문일게다. 귀찮은 건 뒤로 다 미루면서, 누릴건 다 누린다니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다. 떨어지면 비극적인 인생이 시작될 것이다. 그래서 생각하지 않고 있다.

최종심사를 거친 논문을 다시 수정하는 작업은, 정말로 참말로 진짜로 귀찮은 작업이다. 얼굴이 화끈해서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 녀석을 꼼꼼히 차근차근 읽어봐야하다니. 아, 정말 중노동이다. 이렇게 내가 귀찮아,하기싫어,보기싫어, 하는 사이 옆방의 성실한 동기형은 벌써 논문을 마무리하고 도서관에 넘겨 버렸다. 음, 오직 끝냈다는 그 결과만이 부러울 따름이다.

그러는 사이 '가족의 탄생'과 '클림트'를 보아버렸다. 아마도 이 두영화에 대해 쓰기 시작하면, 내 논문은 발간이 위태로워질지도 모르기 때문에 주저리 글은 생략해야만 한다. 암튼 '가족의 탄생'은 놀랍도록 괜찮은 영화였고, '클림트'는 흥미롭지만 클림트를 잘 모르는 내게는 조금 어려운 영화였다.

'논문의 탄생' 이란 제목으로 영화를 만든다면, 이라고 생각을 해보았더니,
매우 나른하고 귀찮으면서 흑백인데다 지겨운 이미지만이 떠올랐다. 아, 물론 초반부는 연두색의 희망적이고 미래지향적이며 즐거운 이미지가 지배해야 한다. 그래야 차마 장렬한 비극이 되지 못한 일상멜루라는 장르에 속할 수 있다.

그런고로 이 글의 주제는 이제 명확해진다.
가족의 탄생, 안 보셨다면 꼭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