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당신 우는가

narre 2005. 10. 4. 08:28
107 장의 영화표와, 30 기가바이트의 사진파일을 남기고 그들은 헤어졌다.

...


혹시 당신 우는가.

짭쪼롭하고 물보다 진득한 그것이 당신 뺨을 거쳐 턱선을 타고 흘러 떨어지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함께한 시간이다.
무엇 때문에 우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나는 원인이 아닌 성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사람 몸의 70%가 물인 것처럼, 만남의 70%를 채우고 있던 것들이 눈물이 되어 밖으로 흐른다.
눈물을 주워담을 수 없는 것처럼, 그 시간 역시 주워담을 수 없다.
그렇게 연인은 공유한 시간의 70%를 흘려보내고서야, 비로소 헤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혼합의서의 인감도장처럼, 그것은 형식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하나의 절차다.
혼자 밥을 먹다가도,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도, 버스에서 딴 생각을 하다가도, 앞사람 머리를 칠 만큼 웃긴 코미디 영화를 보다가도, 이 절차는 갑작스레 거행된다.
'70%까진 아직 꽤 남았어. 이제 겨우 29%란 말이지. 당신, 좀 더 분발하라구.' 라고 말을 하듯 부조리하고 맥락없이 흐른다.
저 깊은 무의식에서 흘러나오는 것처럼 당신은 그 이유를 인식할 수 없다. 왜 라는 질문은 그래서 무의미하다. 인식의 영역이 아닌 곳에서 시작된 것을 당신이 어찌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 할당량을 채우면 그 뿐이다. 그러면 눈물의 이유, 그 복잡한 불순물은 그것을 따라 흘러내리고, 당신은 이윽고 맑아질 것이다.


그리고 연인은 이제 눈물이 되지 못하고 남은 30%의 시간들, 그 단단한 것들이 낙엽처럼 서서히 추억으로 삭아가는 것을 바라보고, 느끼고, 위로받으며 살아간다. 잘 삭힌 시간은 거름이 되고 바탕이 되어 새 시간을 움트게 한다. 못 삭힌 시간은 썩고 악취를 풍기며 다른 시간마저 병들고 죽게 한다.
지금 나는 슬픔이 아닌 태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만남과 헤어짐.

그것은 차이와 반복을 거듭하는 큰 흐름이고 순환이다.
유일하며 평범한, 그래서 소중한 삶의 한 부분이자 전체다.

오직 감사한 마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