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의 철학과 용트림

narre 2005. 1. 12. 16:01
오늘 철학수업은 세 시간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이어졌다.

이제 정년을 삼 년 앞두고 있는 선생님의 열강에 4명 밖에 되지 않는 젊은 수강생들은 처음부터 숨조차 함부로 쉬지 못하고 수업에 집중했다. 선생님은 기존 서양철학의 이원론적인 전통은 데카르트가 꿰멘 첫 단추부터 잘못된 것이라 비판하시며, 몸과 마음을 하나로 보는 '맘(ㅁ 아래아 ㅁ)의 철학'을 역설하셨다. 옛말에 침묵은 금이라고 귀중한 말씀을 소인의 하찮은 수다로 망쳐놓으면 어찌할까 걱정한 우린 이때도 귀만 쫑긋 세우고 눈만 땡그랗게 뜨고 열심히 집중하였다. 그렇게 휴대폰의 시간은 두 시간 삼십 분쯤 흘렀고, 우리 맘의 시간은 다섯시간쯤 흘렀고, 말씀의 시간은 사백년이 흘렀다.

그때까지도 굳게 다문 입과 오롯이 곧추 세운 등과 쫑긋한 귀와 말똥거리는 눈을 유지하던 우리의 몸은, 그제야 지금은 동네 슈퍼에서도 구하기 힘든 새콤달콤 꿈틀이처럼 슬며시 꿈틀거리기 시작했고, 이는 수업을 마치기 십 여분을 남겨두고 급기야 용트림으로 바뀌었다.

"아, 선생님. 몸과 마음은 하나라는데 어찌 이 놈의 몸은 마음의 절절한 호소를 들은 채도 아니하고 이리도 제멋대로 출렁거린답니까"

꿈틀거리던 지렁이가 용으로 승천할 지경이니 강의실이 조용할 리가 없다. 천둥소리처럼 밥 달라는 내 배의 애틋한 소리가 울려퍼지고, 먹구름이 낀 것처럼 눈 앞은 흐려오고, 폭우가 내리는 것처럼 선생님의 말씀이 점점 희미해져간다. 이제 쫑긋세운 귀에는 온통 밥줘, 밥줘,밥줘 하는 소리만 그득하다.

하지만 일개 무사의 아득한 절망은 세상도 비웃는 법. 선생님은 적벽에서 비를 부른 제갈공명처럼, 마지막 순간까지도 꺾이지 않는 의지와 불타는 열정으로 수업을 마감하셨다. 그리곤 나를 위한 마지막 한마디까지 잊지 않으셨다.

"어때 환경대학원생도 배울만한게 있을 것 같나?"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었다.

"몸과 마음은 하나라는데, 지금의 제 몸과 마음은 다르기가 하늘과 땅보다도 더 합니다. 이는 결국 하나가 다른 이를 속이고 있다는 것인데, 이토록 솔직한 몸의 흐느낌을 보건데 필히 몸이 진실된 것이고 마음도 뒷구녕으로는 이를 따르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헌데 수업을 열심히 듣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이 서로 거짓을 말해야 하니 이는 참으로 힘든 것이란 것을 배웠습니다"

허나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네, 참으로 흥미로운 수업이었습니다. 몸과 마음을 함께 봄으로써 자연을 소외시킬 수 밖에 없었던 인식론의 한계를 벗어나, 나와 이를 둘러싼 환경을 함께 사유할 철학의 틀을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다시금 입과 마음이 따로 노나노니, 앎과 삶의 일치가 이리도 힘듦을 다시 한 번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