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배려
narre
2005. 11. 15. 13:14
스스로의 마음을 차분히 돌아보면, 낯선 욕구들이 열심히 제 나름의 운동을 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다양한 색깔의 해파리들처럼 마음 속을 유영하는 녀석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리도 제각각인 녀석들이 모여 나를 이룬다는 사실에 감탄하곤 한다. 저들은 당최 어떤 관계를 맺고 서로를 자극하며 살아 움직이는건가.
내가 할 수 있는건, 지켜보고, 느끼고, 그들이 편히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 뿐이다.
관조하되 방관하진 않는다. 나는 그들에게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
채우지 못하여 결핍된 녀석, 스스로를 잊고 떠도는 녀석, 상처받은 녀석, 웅크린 녀석, 모두가 사랑스럽다.
그들을 사랑스러워하는 이 주체는 누군가. 그것은 결국 그들 자신이다. 그들이란 덩어리.
덩어리는 겸손하려한다. 덩어리의 겸손은 있는 그대로 인정하여 그렇게 흘러감에 있다.
채우지 못한 욕심은 증오가 되거나 미움이 되거나 극단적인 무관심이 된다.
덩어리는 그것을 알기에 욕심까지 인정하려 한다. 그리고 그 욕심에 볕을 비추고 비를 내린다.
욕심이 위로받아 깊이 가라앉을 때까지 따사롭게 지켜보려한다.
그것이 덩어리의 겸손함이다.
그 겸손함으로 덩어리는 편안하다.
하지만 그 편안함은 내버려둔 편안함이 아닌, 자기성찰적 긴장의 편안함이다.
이 편안함을 배려라 한다.
배려는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내버려두지도 기대하지도 않는, 긴장의 편안함인 것이다.
자신을 죽이지도, 상대를 죽이지도 않는 편안함.
대상을 보고 나를 보는 애정.
배려.
다양한 색깔의 해파리들처럼 마음 속을 유영하는 녀석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리도 제각각인 녀석들이 모여 나를 이룬다는 사실에 감탄하곤 한다. 저들은 당최 어떤 관계를 맺고 서로를 자극하며 살아 움직이는건가.
내가 할 수 있는건, 지켜보고, 느끼고, 그들이 편히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 뿐이다.
관조하되 방관하진 않는다. 나는 그들에게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
채우지 못하여 결핍된 녀석, 스스로를 잊고 떠도는 녀석, 상처받은 녀석, 웅크린 녀석, 모두가 사랑스럽다.
그들을 사랑스러워하는 이 주체는 누군가. 그것은 결국 그들 자신이다. 그들이란 덩어리.
덩어리는 겸손하려한다. 덩어리의 겸손은 있는 그대로 인정하여 그렇게 흘러감에 있다.
채우지 못한 욕심은 증오가 되거나 미움이 되거나 극단적인 무관심이 된다.
덩어리는 그것을 알기에 욕심까지 인정하려 한다. 그리고 그 욕심에 볕을 비추고 비를 내린다.
욕심이 위로받아 깊이 가라앉을 때까지 따사롭게 지켜보려한다.
그것이 덩어리의 겸손함이다.
그 겸손함으로 덩어리는 편안하다.
하지만 그 편안함은 내버려둔 편안함이 아닌, 자기성찰적 긴장의 편안함이다.
이 편안함을 배려라 한다.
배려는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내버려두지도 기대하지도 않는, 긴장의 편안함인 것이다.
자신을 죽이지도, 상대를 죽이지도 않는 편안함.
대상을 보고 나를 보는 애정.
배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