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

narre 2005. 1. 12. 15:28
최근 며칠간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웃긴 것은 그래도 규칙적으로 찾아오는 잠이다. 새벽 세시를 넘어서면 정신이 아주 소똥말똥한 상태가 되어 대낮처럼 일을 하고, 네시쯤되면 피크를 이루다가도 여섯시만 되면 무슨일이 있었냐는 듯 금새 천금같은 잠이 머리를 짖누른다. 아주 뭐같다.

잠을 자려는 시도를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주에 이틀 학교가는 백수같은 삶이지만, 6시에 자면 태양이 머리 꼭대기에서 인상쓸 때 쯤에나 일어나게 되는데, 그래서 하루의 반을 금새 잡아먹고는 밥먹고 수업듣고 과외다녀오면 하루가 땡인데, 악착같이 시도해보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항상 똑같은 경로로 다시 눈을 뜨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마는 것이다.

먼저 잠을 자려고 손은 살포시 포개어 배위에 올리고, 머리는 얌전하게 배게에 붙이고, 이불을 턱 아래까지 끌어올리고 눈을 살짝 감는다. 그리고는 잡생각을 지우기 위해 별의별 짓을 다하기 시작한다. 양 세기, 토끼 세기는 기본이고 알고 있는 나무 이름 대기, 물고기 이름 대기부터 시작해서 심지어 예전에 외워뒀던 따분한 공업수학 공식을 유도하기까지 한다. 스스로 생각해도 기특할만큼 아주 열심히, 훌륭하게,진지하게 이런 일들을 수행한다.
그러나... 운이 나쁜 날은 이미 이쯤에서 결판이 난다. 갈수록 정신은 명료해지고 양들은 우리 속으로 들어오지 않고 밖에서 버팅기고 있으며 우리에 들어온 놈도 다시 밖으로 뛰쳐나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수학 공식들이 토하나 안틀리고 아주 한창때나 되는 것처럼 술술 유도가 되는 것이다. 결국 나는 시불렁 거리며 이불을 걷어내고 만다.

에...또... 운이 조금 좋은 날이있다. 오늘 같은 날. 이런 날은 양들이 아주 착실히 우리 안으로 뛰어 들어온다거나 수학공식이 너무도 지루하여 졸음이 야금야금 이성을 잠식해 들어가는 날이다. 이런 날 나는 확실히 잠식되어가는 이성의 영역을 기쁜 눈으로 지켜보며(이건 몇 가지 실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누군가의 전화번호를 외워본다거나 어느 철학자의 이론을 다시 떠올려보는 등의 실험을 해보면 뇌에서 정보를 끄집어내기 아주 귀찮다는 반응을 보내온다.) 정숙한 자세로 축복의 무의식 세계로 떠날 차비를 한다. 행여 들뜬 마음에 소중한 잠이 달아나버릴까 들썩대지 않으려 노력하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모스키토라는 파리 사촌쯤 되는 이 놈, 완전변태 곤충이라고 엠파스 백과사전에도 떡하니 나와있는 이 놈이 그 저열한 날개를 부비며 엄청난 속도와 굉음을 동반한채 나에게로 돌격해오는 것이다. 나는 사람좋게 몇 번의 헌혈을 감수하며 모처럼 찾아온 단잠을 고이 품고 있으려 노력을 하건만, 이 놈의 모기라는 미물은 중용이란 것을 모르나 보다. 물고 또 물고하여 온 팔에 국립묘지를 만들고 나서도 윙윙거리는 그 소리를 그치지 않으며 결국에는 고이 품고 있던 내 황금달걀을 탈취해 간다.

그 뿐인가. 모기로 살짝 각성된 나의 이성, 그 무의식과 의식의 미묘한 경계지점에 틈이 생긴 순간 그 사이로 쏟아져 들어오는 벼라별 고민거리들은 모기보다 더하다. 이놈들은 소리없지만 더 시끄럽고, 물지 않지만 더 가려운 놈들이다. 아무리 홈매트를 켜고 손바닥을 쳐도 사라지지 않는 놈들이다. 특히 눈을 떠도 감은 것과 똑같은 이 어둠 속- 그 찰흙같은 무의식의 영역에서 이 놈들의 영향력은 엄청난데, 수십명의 깍두기 머리를 한 녀석들이 머리를 짖누르고 온 몸을 압박하며 '니는 잘 안될끼다'라는 일관된 어조로 협박하는 통에 결국에 나는 두 손 두 발 다 들고 항복하고 만다.

힘없이 이불을 밀치고 일어나 형광등을 밝히고, 홈매트를 켜고, 이를 갈며 모기 몇마리를 잡고는 컴퓨터를 켜는 것이다. 그렇게 밖은 어둠이지만 인간의 불빛이 만든, 그래서 인공적이며 불완전한 이성의 세계로, 의식의 세계로 떨떠름하게 걸어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아직 저 뒤안치 얼마 떨어지지 않은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에서, 손짓발짓 다하며 나를 부르는 시커먼 놈들을 힘없이 바라보며 좌판을 치는 것이다. 타닥... 타닥...

모기를 잡았더니 두 손이 온통 피투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