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사운드 데이
narre
2006. 1. 15. 02:04
사운드 데이를 맞아 홍대로 마실.
버드와이저 한 병 + 레종 한 갑 + 공연 마음껏 =15000원이니 정말 싸다.
웅산 공연은 기대만큼 좋았다. 말로 공연 때 세션했던 기타리스트 얼굴도 반가웠고, 함께 하는 뮤지션들 실력이 다 수준급이라 귀가 즐거웠다. 그렇게 듣고팠던 call me도 직접 듣고, cd도 즉석에서 미나에게 선물 받고, 해피해피. 비슷한 창법에 비슷한 목소리인데도 말로보다 훨씬 편했던 건 왜일까.
올드피쉬 공연은 사운드 상태가 안좋아서 슬픔. 그치만 담백한 멘트들로 즐거웠다.
'비오는 날에는' 좋다. ㅎㅎ
올드피쉬 공연에 좀 일찍 갔더니, 어려 보이는 밴드가 공연을 하고 있었다. 사운드 데이 오디션 통과 팀이라던데, 꼭 스쿨밴드 같은 인상이었다. 마침 우리가 서있던 곳이 학부모님(?)이 앉아계신 테이블 앞이서 더욱 그랬던 듯. 이상하게 인상이 꽤 깊었는데, 노래가 좋아서도 연주가 훌륭해서도 아니었다. 그 어린 밴드 특유의 미숙함, 아직 여물지 않은 모습이 보기 좋고, 회상적인 느낌을 준 것 같다. 고등학교 다닐 때 밴드했던 친구 녀석도 생각나고, 부모와의 갈등 화해, 친구들과의 관계, 박수, 등등의 스토리가 막 떠오르는 것이. 상투적인 상상이었지만 괜찮은 느낌이었다. 담배와 맥주와 필링이 난무하는 락공연장에서 유독 빛나던 학부모님들의 흐뭇한 표정이 좋아서였을지도.
학부 때는 잘 다니지도 않던 홍대를, 뒤늦게 많이 다니게 되네.
재즈 공연을 시작으로 사운드 데이까지..
인디밴드들의 공연이 즐거운 이유는, 함께 꿈을 만들어 간다는 느낌이 잘 전해져오기 때문인 것 같다. 홀로 꾸는 꿈이 아니고, 함께 꾸는 꿈. 좌절하고 절망하고 그래도 다시 시작하는 그런 꿈.
언제더라. 학부 이학년때였나, 삼학년때였나.
왠지 이대로 심심하게 인생이 끝날 것 같단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적당히 공부해서 대기업에 취직하고, 결혼하고 차를 사고 집을 사고 아이를 갖고 늙어서 죽는 삶.
그 반대급부로 꿈을 가지고 싶다는 강렬한 소망이 있었고, 그런 꿈이 없다는데서 오는 절망이 있었고, 그보다 컸던 건 실은 내가 버릴 수 있게 하나도 없다는데서 오는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이었고.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편안하게 여러가지를 생각한다. 삶 전체를 걸고 이루고 싶은 꿈은 없지만, 작은 소망들이 있고,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들 사이에서 괜찮은 선택을 할 수 있을거란 자신이 생겼고, 무엇을 하며 살 것인지보단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우선시 할 수 있는 여유도 생겼고, 헤헷.
사람마다 마음이 좀 편안해지는 계기가 있겠지만, 내 경우엔 전공을 바꾼게 꽤 컸던 것 같다. 뭐 어느정도는 타협이긴 했지만, 처음으로 잘 가던 길을 살짝 내 의지로 벗어난거니까. 그런 선택의 경험이 내게 준게 꽤 많았던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