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어느 여름날의 일기
narre
2005. 1. 12. 15:23
오늘 아침 나를 깨운건 결정적으로는 후배가 준 10개의 알람기능을 갖춘 휴대폰 소리였지만, 그 10개 중 처음 것만 듣고 나를 깨게 만든 건 투우의 콧김처럼 집중적으로 후덥지근한 공기였다. 5시간만에 나를 깨운 더위에게 진심어린 경의를 표하며 나는 허둥지둥 샤워를 마쳤다.
오늘은 과외가 두개 있는 날이다. 먼저번 것이 압구정에서 있기에 한손에는 가끔 읽는 여성작가의 연애 소설을 하나 들고 다른 손은 2호선 지하철의 손잡이에 걸쳐놓고는 설렁거리며 독서를 시작했다. 다행히 지하철엔 닭살이 돋을만큼 찬바람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이기적인 기계라고 비웃어 마지 않던 바로 그 에어컨에게 감사하고 있는 나를 인식하고는 그 간사함에 조금은 놀란 척 해본다. 이런 생각은 언제나 금방 스쳐지나간다. 그리고 막 다른 생각에 몰입할 때쯤엔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의 존재감을 전혀 느끼지 못 했다. 그렇게 지독하게 내리쬐는 태양-소위 생명의 원천이라 불리는-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죽어 있는 듯한 아침이었다. 심지어 지하철의 에스칼레이터 마저 멈춰 있었다.
압구정역 1번 출구로 나왔다. 수천명이 헤비메탈을 부르는 듯한 매미소리에 귀가 다 얼얼하다. 그들은 얼마남지 않은 생명엔 신경도 쓰지 않는 다는 듯이 일말의 슬픔도 없는 목소리로 절규하고 있었다. 여름은 이들 곤충의 계절이다. 그들처럼 딱딱하고 건조한 껍질을 가지지 않고서는 견뎌내기 힘든 계절인 것이다. 아파트까지 걸어가는 길에 나는 수십구가 넘는 매미들의 시체를 볼 수 있었다. 그것들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바닥에 살며시 업드려 있었다. 매미들의 시체를 보고 있으니 며칠전 사범대 운동장에서 본 수백쌍이 넘는 잠자리들의 짝짖기가 생각났다. 그들이 황홀한 허니문 비행의 시기를 오늘로 잡았더라면 매미와 마찬가지로 죽음을 맞이 했을까? 갑자기 웃음보가 터져나왔다. 생각해보라. 복상사인 것이다.(배 복, 윗 상, 죽을 사) 그것도 잠자리의 복상사. 모 스포츠 신문 연예면에나 나올법한 타이틀이다. 문득 그것을 기사로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머리가 벗겨진 아저씨, 모자를 푹 눌러쓴 청년등이 첫면의 타이틀을 보고는 모 정치인의 희극적 죽음을 상상하며 신문을 사들었다가 잠시 후엔 욕설을 지껄여댈 것이다. X같은 신문이니,뭐 이딴 게 다있냐는니 하면서 말이다. 그들은 항상 그렇게 욕을 지껄이고 실망하면서도 다음날이면 가게에서 500원을 내고 같은 신문을 뽑아든는 것이다. 세상엔 그렇게 변하지 않을 것만 같은 일들이 1년에 기아로 죽는 사람수보다도 많다. 잠자리의 복상사만큼 희극적이고 매미들의 죽음만큼 슬픈일이다.
이런저런 생각중에도 아직 아파트에 당도하지 않았다. 용케도 그늘만을 골라서 다니느라 발걸음이 더뎌졌나보다. 사실 이런날의 일교차란 밤과 낮의 온도차라기 보다는 음지와 양지의 온도차가 아닐까 싶다. 아직도 변함없이 내리쬐는 지겨운 태양을 보면 <이방인>의 뫼르소는 단지 더위에 의한 짜증때문에 방아쇠를 당긴 것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마저 든다.
굼뜬 발걸음에도 30분이나 일찍 과외집엘 도착했다. 그냥 들어가기엔 조금 이른 시간이라 이런 때면 항상 가는 복도 끝자락의 계단에 앉았다. 시야가 탁 트여서 한강이 내다 보이는 그곳은 과외를 시작할 당시부터 내 마음에 쏙 들어서 단골술집처럼 자주 애용하는 장소이다. 아까 읽다만 연애 소설을 펼쳐 들자 조금은 심각한 이별 장면이 나온다. 연애 소설은 언제나 그렇고 그런 이야기지만 언제나 그렇고 그런 슬픔과 재미를 주기에 간간히 읽지 않을 수가 없다. 어느 바에서 일어나는 주인공 커플의 심각한 이별장면을 읽어내면서 나는 우습게도 그들이 마시는 맥주에 주목한다. 생각해보니 어제 밤부터 아무것도 마시지 않고 땀만 흘려대고 있었다.
나는 아무런 잡념없이 두개의 과외를 마쳤다. 중간엔 다른 과외집으로의 이동과 시시껄렁한 농담과 날씨 이야기가 있었지만 마치고 나니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아마도 그 후에 죽어라고 집으로 뛰어왔기 때문인 듯 했다. 가끔 누군가 보고 싶을때 나는 그렇게 허용된 범위에서의 미친짓을 하곤했다. 신설동에서 집으로 오는 시간이 평소보다 20분은 단축되었지만 기대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처음엔 성난 황소 같이 격렬하고 정열적이던 헐떡임이 곧 복날의 개처럼 나른하고 우울한 그것으로 바뀌어 갔다. 선풍기를 틀자 화학실험에서 에탄올로 용기를 씻을 때처럼 온몸 구석구석의 땀이 차갑게 증발하기 시작했다.
몇 시간 동안 한 가지 일만 했다. 하루종일 한끼 밥도 갖고 놀지 못한 위가 안쓰러워서 도중에 잠시 3분 짜장과 밥과 김치를 쑤셔 넣어주기도 했다. 어제 산 아이스티 가루를 누군가 타먹은 흔적이 있는 컵에 다시 타 먹는다. 플라스틱 포크로 젓개를 대신한 경우를 나는 처음 본다. 보통 나는 젓가락을 쓴다.
9시가 조금 넘으니 갑작스레 달리기가 하고 싶어져서 헐벗은 운동화를 신고 운동장으로 향했다. 후덥지근한 공기는 질기게 남아있어 흙모래 바닥 위를 맴돌고 있었다. 나는 전화를 하며 3바퀴쯤을 돌고는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기를 하면 내 성격이 곧잘 드러나곤 한다. 나는 남보다 천천히 달리다 나중에 추격한다는 공식과는 거리가 먼 종류의 인간이었다. 처음에 강렬하게 달려서 컨디션이 좋아 지속되면 다행이고 아니면 그뿐이었다. 때문에 끝발이 약하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바로 앞에선 세명의 여자애들이 버스 잡을 때 뛴거 이후로는 처음이라며 신이나서 달리고 있었다. 곧 그녀들을 지나쳤다. 천천히 속도를 올리며 다섯바퀴쯤을 더 돌았다. 옆구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갑작스레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오려했다. 이게 무슨 낭패란 말인가. 처음부터 징조는 있었다. 무언가가 저 아래부터 계속 솟구쳐 올라왔고 그런 폭발할 것 같은 에너지가 나를 운동장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다만 그것이 이런 짭쪼롬하고 끈적끈적한 맛과 감촉을 지닌 액체일줄은 몰랐던 것이 불찰이었다. 녀석을 막으려고 아픈 배를 움켜쥐고는 더욱 속도를 냈다. 경험에 비춰 보건데 이런 배아픔은 몇 바퀴 더 돌면 쉽게 사라지는 성질의 것이다. 눈으로 솟구쳐 나오던 수분이 다행히도 온몸으로 쏟아져 나왔다. 속옷까지 흠뻑 젖는 축축함이 곧 나를 탈진 시키고 말 것 같았다.
문득 한손에는 휴대폰이 바톤처럼 들려있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예전에 봤던 마라톤 만화가 생각이 났다. 그 만화에선 바톤을 건네 받으면 그것을 가져다준 사람들 각각의 무게가 실려 철근처럼 무겁게 느껴진다 하였다. 나는 휴대폰에 입력된 기억번지의 대상들을 0번부터 차례로 떠올려 보았다. 하나씩 하나씩 차례로 떠올리고 나자 그 만화와는 반대로 휴대폰이 수소 풍선처럼 가볍게 느껴졌다. 왜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아니 그때 이미 내 몸은 더 이상 뇌 주름을 자극하는데 산소를 소비할 만큼 한가하지 않았다. 언젠가 시골 할머니 집에서 본 펌프처럼 서걱거리면서 육체 구석구석으로 산소를 투입하고 있었다. 마치 전쟁영화의 용병이 투입되는 장면처럼 노골적인 목적을 가진 행위에 반쯤 놀라고 반쯤은 질려버렸다.
철퍼덕하고 벤치에 드러누었다. 그것은 시멘트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한낮의 태양열을 아직도 보존하고 있어 도무지 차가운 바닥의 느낌이라곤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반대로 악마가 있다면 딱 그 느낌일 정도로 진득하고 후끈하게 바닥으로 바닥으로 나를 끌어 당겼다. 무섭게 가벼워져 이젠 존재감도 느껴지지 않는 휴대폰은 미련없이 철봉 밑 모래사장에 던져버렸다. 보통 그렇게 하면 수소풍선은 날아가다 터져 버리는데 녀석은 바닥에 들입다 머리부터 꽂아버렸다.(앞서 언급했듯이 가끔 나의 광기는 이렇게 소심하게 발출된다)
십분쯤 그렇게 누워있었나 보다. 나는 그제야 툭툭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팔굽혀펴기를 마흔개쯤 한 뒤 집으로 향했다. 수분에 녹아 무언가 빠져나간 것이 분명한데 그게 무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찬물과 미지근한 물을 번갈아 사용하는 기분 좋은 샤워를 하면서 빠져나간 그 무언가가 그다지 중요치는 않은 것일꺼라고 미뤄 짐작해본다. 혹은 중요한 것이었더라도 내겐 그다지 적절치 않았기에 빠져나갔을 것이라고 낙관적인 상상도 해본다. 아직 남아 있는 것이 소중한 것임은 확실했기 때문이다. 나는 화학전지와 염다리를 생각하며 방으로 들어왔고 오늘 현금을 한푼도 쓰지 않은 것에 만족해하며(교통카드 지출은 쓴 것 같은 느낌을 주지 않는다.) 복숭아맛 아이스 티를 다시 타 마셨다. 아이스 티를 한 잔 쭉 들이키며 기상청에 접속해 보니 며칠간은 무더위가 계속 된다고 한다. 이처럼 더럽게 더운 세상을 살아나가려면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능력은 갖추지 못하더라도 우울과 짜증과 헝클어짐을 무언가로 바꾸는 재주는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20020729
오늘은 과외가 두개 있는 날이다. 먼저번 것이 압구정에서 있기에 한손에는 가끔 읽는 여성작가의 연애 소설을 하나 들고 다른 손은 2호선 지하철의 손잡이에 걸쳐놓고는 설렁거리며 독서를 시작했다. 다행히 지하철엔 닭살이 돋을만큼 찬바람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이기적인 기계라고 비웃어 마지 않던 바로 그 에어컨에게 감사하고 있는 나를 인식하고는 그 간사함에 조금은 놀란 척 해본다. 이런 생각은 언제나 금방 스쳐지나간다. 그리고 막 다른 생각에 몰입할 때쯤엔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의 존재감을 전혀 느끼지 못 했다. 그렇게 지독하게 내리쬐는 태양-소위 생명의 원천이라 불리는-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죽어 있는 듯한 아침이었다. 심지어 지하철의 에스칼레이터 마저 멈춰 있었다.
압구정역 1번 출구로 나왔다. 수천명이 헤비메탈을 부르는 듯한 매미소리에 귀가 다 얼얼하다. 그들은 얼마남지 않은 생명엔 신경도 쓰지 않는 다는 듯이 일말의 슬픔도 없는 목소리로 절규하고 있었다. 여름은 이들 곤충의 계절이다. 그들처럼 딱딱하고 건조한 껍질을 가지지 않고서는 견뎌내기 힘든 계절인 것이다. 아파트까지 걸어가는 길에 나는 수십구가 넘는 매미들의 시체를 볼 수 있었다. 그것들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바닥에 살며시 업드려 있었다. 매미들의 시체를 보고 있으니 며칠전 사범대 운동장에서 본 수백쌍이 넘는 잠자리들의 짝짖기가 생각났다. 그들이 황홀한 허니문 비행의 시기를 오늘로 잡았더라면 매미와 마찬가지로 죽음을 맞이 했을까? 갑자기 웃음보가 터져나왔다. 생각해보라. 복상사인 것이다.(배 복, 윗 상, 죽을 사) 그것도 잠자리의 복상사. 모 스포츠 신문 연예면에나 나올법한 타이틀이다. 문득 그것을 기사로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머리가 벗겨진 아저씨, 모자를 푹 눌러쓴 청년등이 첫면의 타이틀을 보고는 모 정치인의 희극적 죽음을 상상하며 신문을 사들었다가 잠시 후엔 욕설을 지껄여댈 것이다. X같은 신문이니,뭐 이딴 게 다있냐는니 하면서 말이다. 그들은 항상 그렇게 욕을 지껄이고 실망하면서도 다음날이면 가게에서 500원을 내고 같은 신문을 뽑아든는 것이다. 세상엔 그렇게 변하지 않을 것만 같은 일들이 1년에 기아로 죽는 사람수보다도 많다. 잠자리의 복상사만큼 희극적이고 매미들의 죽음만큼 슬픈일이다.
이런저런 생각중에도 아직 아파트에 당도하지 않았다. 용케도 그늘만을 골라서 다니느라 발걸음이 더뎌졌나보다. 사실 이런날의 일교차란 밤과 낮의 온도차라기 보다는 음지와 양지의 온도차가 아닐까 싶다. 아직도 변함없이 내리쬐는 지겨운 태양을 보면 <이방인>의 뫼르소는 단지 더위에 의한 짜증때문에 방아쇠를 당긴 것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마저 든다.
굼뜬 발걸음에도 30분이나 일찍 과외집엘 도착했다. 그냥 들어가기엔 조금 이른 시간이라 이런 때면 항상 가는 복도 끝자락의 계단에 앉았다. 시야가 탁 트여서 한강이 내다 보이는 그곳은 과외를 시작할 당시부터 내 마음에 쏙 들어서 단골술집처럼 자주 애용하는 장소이다. 아까 읽다만 연애 소설을 펼쳐 들자 조금은 심각한 이별 장면이 나온다. 연애 소설은 언제나 그렇고 그런 이야기지만 언제나 그렇고 그런 슬픔과 재미를 주기에 간간히 읽지 않을 수가 없다. 어느 바에서 일어나는 주인공 커플의 심각한 이별장면을 읽어내면서 나는 우습게도 그들이 마시는 맥주에 주목한다. 생각해보니 어제 밤부터 아무것도 마시지 않고 땀만 흘려대고 있었다.
나는 아무런 잡념없이 두개의 과외를 마쳤다. 중간엔 다른 과외집으로의 이동과 시시껄렁한 농담과 날씨 이야기가 있었지만 마치고 나니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아마도 그 후에 죽어라고 집으로 뛰어왔기 때문인 듯 했다. 가끔 누군가 보고 싶을때 나는 그렇게 허용된 범위에서의 미친짓을 하곤했다. 신설동에서 집으로 오는 시간이 평소보다 20분은 단축되었지만 기대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처음엔 성난 황소 같이 격렬하고 정열적이던 헐떡임이 곧 복날의 개처럼 나른하고 우울한 그것으로 바뀌어 갔다. 선풍기를 틀자 화학실험에서 에탄올로 용기를 씻을 때처럼 온몸 구석구석의 땀이 차갑게 증발하기 시작했다.
몇 시간 동안 한 가지 일만 했다. 하루종일 한끼 밥도 갖고 놀지 못한 위가 안쓰러워서 도중에 잠시 3분 짜장과 밥과 김치를 쑤셔 넣어주기도 했다. 어제 산 아이스티 가루를 누군가 타먹은 흔적이 있는 컵에 다시 타 먹는다. 플라스틱 포크로 젓개를 대신한 경우를 나는 처음 본다. 보통 나는 젓가락을 쓴다.
9시가 조금 넘으니 갑작스레 달리기가 하고 싶어져서 헐벗은 운동화를 신고 운동장으로 향했다. 후덥지근한 공기는 질기게 남아있어 흙모래 바닥 위를 맴돌고 있었다. 나는 전화를 하며 3바퀴쯤을 돌고는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기를 하면 내 성격이 곧잘 드러나곤 한다. 나는 남보다 천천히 달리다 나중에 추격한다는 공식과는 거리가 먼 종류의 인간이었다. 처음에 강렬하게 달려서 컨디션이 좋아 지속되면 다행이고 아니면 그뿐이었다. 때문에 끝발이 약하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바로 앞에선 세명의 여자애들이 버스 잡을 때 뛴거 이후로는 처음이라며 신이나서 달리고 있었다. 곧 그녀들을 지나쳤다. 천천히 속도를 올리며 다섯바퀴쯤을 더 돌았다. 옆구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갑작스레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오려했다. 이게 무슨 낭패란 말인가. 처음부터 징조는 있었다. 무언가가 저 아래부터 계속 솟구쳐 올라왔고 그런 폭발할 것 같은 에너지가 나를 운동장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다만 그것이 이런 짭쪼롬하고 끈적끈적한 맛과 감촉을 지닌 액체일줄은 몰랐던 것이 불찰이었다. 녀석을 막으려고 아픈 배를 움켜쥐고는 더욱 속도를 냈다. 경험에 비춰 보건데 이런 배아픔은 몇 바퀴 더 돌면 쉽게 사라지는 성질의 것이다. 눈으로 솟구쳐 나오던 수분이 다행히도 온몸으로 쏟아져 나왔다. 속옷까지 흠뻑 젖는 축축함이 곧 나를 탈진 시키고 말 것 같았다.
문득 한손에는 휴대폰이 바톤처럼 들려있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예전에 봤던 마라톤 만화가 생각이 났다. 그 만화에선 바톤을 건네 받으면 그것을 가져다준 사람들 각각의 무게가 실려 철근처럼 무겁게 느껴진다 하였다. 나는 휴대폰에 입력된 기억번지의 대상들을 0번부터 차례로 떠올려 보았다. 하나씩 하나씩 차례로 떠올리고 나자 그 만화와는 반대로 휴대폰이 수소 풍선처럼 가볍게 느껴졌다. 왜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아니 그때 이미 내 몸은 더 이상 뇌 주름을 자극하는데 산소를 소비할 만큼 한가하지 않았다. 언젠가 시골 할머니 집에서 본 펌프처럼 서걱거리면서 육체 구석구석으로 산소를 투입하고 있었다. 마치 전쟁영화의 용병이 투입되는 장면처럼 노골적인 목적을 가진 행위에 반쯤 놀라고 반쯤은 질려버렸다.
철퍼덕하고 벤치에 드러누었다. 그것은 시멘트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한낮의 태양열을 아직도 보존하고 있어 도무지 차가운 바닥의 느낌이라곤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반대로 악마가 있다면 딱 그 느낌일 정도로 진득하고 후끈하게 바닥으로 바닥으로 나를 끌어 당겼다. 무섭게 가벼워져 이젠 존재감도 느껴지지 않는 휴대폰은 미련없이 철봉 밑 모래사장에 던져버렸다. 보통 그렇게 하면 수소풍선은 날아가다 터져 버리는데 녀석은 바닥에 들입다 머리부터 꽂아버렸다.(앞서 언급했듯이 가끔 나의 광기는 이렇게 소심하게 발출된다)
십분쯤 그렇게 누워있었나 보다. 나는 그제야 툭툭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팔굽혀펴기를 마흔개쯤 한 뒤 집으로 향했다. 수분에 녹아 무언가 빠져나간 것이 분명한데 그게 무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찬물과 미지근한 물을 번갈아 사용하는 기분 좋은 샤워를 하면서 빠져나간 그 무언가가 그다지 중요치는 않은 것일꺼라고 미뤄 짐작해본다. 혹은 중요한 것이었더라도 내겐 그다지 적절치 않았기에 빠져나갔을 것이라고 낙관적인 상상도 해본다. 아직 남아 있는 것이 소중한 것임은 확실했기 때문이다. 나는 화학전지와 염다리를 생각하며 방으로 들어왔고 오늘 현금을 한푼도 쓰지 않은 것에 만족해하며(교통카드 지출은 쓴 것 같은 느낌을 주지 않는다.) 복숭아맛 아이스 티를 다시 타 마셨다. 아이스 티를 한 잔 쭉 들이키며 기상청에 접속해 보니 며칠간은 무더위가 계속 된다고 한다. 이처럼 더럽게 더운 세상을 살아나가려면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능력은 갖추지 못하더라도 우울과 짜증과 헝클어짐을 무언가로 바꾸는 재주는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2002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