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어른
narre
2005. 9. 5. 12:49
도서관 가는 길에 산책하는 고냥을 만남.
보통 길에서 만나는 고양이는 뭔가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는 듯한 낌을 줄 때가 많다. 먹이를 찾는다던지, 나비를 쫓는다던지하는 둥의. 꼭 그렇진 않더라도 미묘한 긴장 같은게 느껴져서 나까지 마음이 조마조마해지곤 한다. 하지만 이 고양이는 달랐다. 마치 선승처럼 여유롭게 주변을 휘휘 둘러보며 걷고 있었다. 검은색과 흰색이 섞인 얼룩 고양이었는데, 동작 하나하나가 느리면서 품위기 있어서 범접할 수 없는 기운 같은 것이 느껴졌다. 나는 감히 방해할 수 없어 그 옆을 숨죽여 지나쳤다.
아마도 집에서 곱게 길러지다 출가한 후, 관악산서 도를 닦는 중 심심해서 잠시 학교에 산책을 나온 고양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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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푹 잤다. 아, 상쾌하여라.
연구실에 와보니 사람들로 복자복자.
밥 먹으러 우르르 몰려가는 모습에 개강 분위기 물씬이다.
정온동물.
포유류는 마음도 온도가 일정한가보다. 37.5도로.
그니까 여름되면 차게 느껴지고, 겨울되면 따뜻하게 느껴지고 그러지.
어른이 된다는 것.
'어른'에 대한 다양한 정의와 해석이 있겠지만, 사회적인 차원의 어른에 대해 말하자면,
어른이 되는건...
두렵다기보단, 싫은거다.
된다면 또 그럭저럭 잘 해나갈 자신이 있고, 그 안에서 만족을 찾을 자신도 있고, 뭐 그런식의 오만이면 오만이고 자신이면 자신인 것이 있지만, 사회의 생산력 향상에 기여하도록 요구받는게 스스로 그리 탐탁하지 않다. 게다가 아이->청년->어른으로 가는 그 비가역적인 흐름 역시 그리 마땅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책임의 측면이라면, 자신이 맺고있는 관계에 대해 책임져야하는 부분이 있는거고, 그런 부분에 책임지는거야 마땅하고 나의 몫이지만, 사회적 차원의 어른이 져야하는 책임들은 당연하다거나 내 몫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음에도, 그런 책임을 짊어지고 사는 삶이 훌륭한 어른의 삶이라고 강요받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모든 것엔 때가 있다는 말도 어떤 측면에선 맞는 말이고, 때를 너무 넘긴 삶을 살고 싶은 것도 아니니.
다만 '어른'이 가진 그 다양한 측면의 함의를 아직 구분해내지 못하고 있고, 지금이 나의 '때'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객관적인 수치가 어른에 부합한다고 해서 그저 통채로 받아들이긴 싫다는 거겠지.
보통 길에서 만나는 고양이는 뭔가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는 듯한 낌을 줄 때가 많다. 먹이를 찾는다던지, 나비를 쫓는다던지하는 둥의. 꼭 그렇진 않더라도 미묘한 긴장 같은게 느껴져서 나까지 마음이 조마조마해지곤 한다. 하지만 이 고양이는 달랐다. 마치 선승처럼 여유롭게 주변을 휘휘 둘러보며 걷고 있었다. 검은색과 흰색이 섞인 얼룩 고양이었는데, 동작 하나하나가 느리면서 품위기 있어서 범접할 수 없는 기운 같은 것이 느껴졌다. 나는 감히 방해할 수 없어 그 옆을 숨죽여 지나쳤다.
아마도 집에서 곱게 길러지다 출가한 후, 관악산서 도를 닦는 중 심심해서 잠시 학교에 산책을 나온 고양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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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푹 잤다. 아, 상쾌하여라.
연구실에 와보니 사람들로 복자복자.
밥 먹으러 우르르 몰려가는 모습에 개강 분위기 물씬이다.
정온동물.
포유류는 마음도 온도가 일정한가보다. 37.5도로.
그니까 여름되면 차게 느껴지고, 겨울되면 따뜻하게 느껴지고 그러지.
어른이 된다는 것.
'어른'에 대한 다양한 정의와 해석이 있겠지만, 사회적인 차원의 어른에 대해 말하자면,
어른이 되는건...
두렵다기보단, 싫은거다.
된다면 또 그럭저럭 잘 해나갈 자신이 있고, 그 안에서 만족을 찾을 자신도 있고, 뭐 그런식의 오만이면 오만이고 자신이면 자신인 것이 있지만, 사회의 생산력 향상에 기여하도록 요구받는게 스스로 그리 탐탁하지 않다. 게다가 아이->청년->어른으로 가는 그 비가역적인 흐름 역시 그리 마땅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책임의 측면이라면, 자신이 맺고있는 관계에 대해 책임져야하는 부분이 있는거고, 그런 부분에 책임지는거야 마땅하고 나의 몫이지만, 사회적 차원의 어른이 져야하는 책임들은 당연하다거나 내 몫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음에도, 그런 책임을 짊어지고 사는 삶이 훌륭한 어른의 삶이라고 강요받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모든 것엔 때가 있다는 말도 어떤 측면에선 맞는 말이고, 때를 너무 넘긴 삶을 살고 싶은 것도 아니니.
다만 '어른'이 가진 그 다양한 측면의 함의를 아직 구분해내지 못하고 있고, 지금이 나의 '때'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객관적인 수치가 어른에 부합한다고 해서 그저 통채로 받아들이긴 싫다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