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연애 - 작업
narre
2006. 6. 28. 01:16
바야흐로 연애시즌인가보다. 주변은 연애를 시작하거나, 시작하려는 이들로 부산하다. 시기가 그렇다보니 연애 카운셀러로서의 일거리가 많이 들어와 나도 덩달아 바쁘다. 왜 옛날부터 나는 카운셀러라는 역할을 즐겨 맡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적합한 조언을 많이 할 수 있어서라기보다는 본 장르에 스스로 관심이 많아, 경청하여 듣고 같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인듯하다. 그리하여 요즘은 연애에 대해 많이 듣고 보고 생각하는 바, 한 번쯤은 이러한 생각을 정리해 두어야겠다 싶어 글을 쓴다. 아마도, 만남-사귐-헤어짐의 삼부작 쯤 되지 않을까. 세 글을 관통하는 소재는 '소통'. 남남이었던 두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에서 소통은 어떠한 역할과 작용을 하는지가 주제. 오늘은 그 첫번째, 만남의 시기에 관한 글 연애를 시작하기 전까지의 두 행위자간의 소통을 속세에선 '작업'이라고 부른다. 이 작업의 기간은 기본적으로 가장 비합리적인 행위가 줄줄이 행해지고, 심지어 권장되기까지 하는 기간이다. 사회가 민주화될수록 정보의 공개와, 이해당사자들의 의사소통을 통한 합의가 중시 되는데, 이 '작업'이란 행위만은 시대의 흐름을 전혀 따라가지 못한다. 오히려 작업에 있어 정보(상대에 대한 감정)의 공개와 공유라는 민주적 행위는 '고백'이라는 높은 기회비용(그간의 관계를 잃을 가능성이 높은)과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비효율적 행위가 된다. 그뿐인가. 부끄럽기까지 하다. 아... 생각만 해도 부끄럽지 않은가. *^^* 부끄부끄... 물론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연애에 있어서도 각자가 가진 정보를 자유롭게 공개하고, 서로의 합의와 토론을 거쳐 연애를 할 지 말지를 결정하면 되지 않는가. 왜 귀찮시럽구로 상대의 감정상태를 살피려 그렇게 기를 쓰고 스토킹을 하고, 작은 정보 하나에도 희비가 엇갈리며, 오해와 이해를 왔다갔다 하는가. (지금부터 '감정'이란 용어는 연애 시작 전의 두 '젊은' 행위자가 서로에게 가지는 열정- 성욕, 인정욕, 결핍에 대한 보상 등이 헝클어져있는-으로 제한시켜 사용하도록 하자.)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정보의 공개'와 '감정의 변화'를 독립시행으로 판단하는 우를 범하고 있으며, 따라서 연애물정 모르는 순진한 생각이다. 작업의 존재이유와 그 깊은 묘미는 바로 감정의 변화가능성에 있다. 감정이 항구불멸하는 무엇이라면 작업 같은 귀찮은 행위가 왜 필요하겠는가. 헌데 이 감정이란 녀석은 요동질을 밥먹듯이 하고,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존재이니 이 녀석을 다룰 수 있는 행위가 필요할 수 밖에. 감정의 요동질은 언제나 비인식의 영역에서 나오는 무언가를 에너지원으로 삼고, 스스로 살아 춤추니 제어가 쉽지 않다. 그래서 제어라기보단 양육에 가까운 행위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 양육에 사용되는 두 가지 스킬이 바로 채찍과 당근,좀 더 구체적으로는 비정보(호기심)과 정보(먹이)인 것이다. 우선 비정보, 즉 정보의 결핍으로 인한 호기심은 감정의 포텐셜을 키운다. 감정은 정보(상대의 감정표현)를 먹고 자라는데 정보가 들어오지 않으니 배고프고 목말라 둥지안의 아기새들처럼 고개를 쭉 뻗고 부리를 종긋거린다. 이때 던져진 한조각의 먹이- 정보는 꿀처럼 달기 그지없다. 아기새는 이 정보를 먹고 무럭무럭 자란다.(상대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리송하기 그지 없을때 상대가 툭 하고 던진 호감에 찬 말한마디를 떠올려보라.) 하지만 알고보니 이 새는 천하의 변덕쟁이에 싫증쟁이다. 삼시 세끼 꼬박꼬박 먹여주면 금새 당연한 줄 알고 지루해한다. 그뿐인가, 같은 먹이에도 금새 싫증을 내고 새로운 것을 요구한다. (처음엔 호감에 찬 말 한마디에도 감격하다가, 그것이 반복되고 더이상의 진전이 없으면 '저 사람 원래 저렇구나'하고 생각해버린다.) 때문에 노련한 사육사는 적당한 때에 다채로운 먹이를 던져줄 수 있어야 한다. 감정(혹은 열정)이 정보에 대해 가지는 이러한 변덕스러운 태도는 작업이 비합리적인 행위가 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이유로 성공적인 작업은 아래와 같은 두가지 조건을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한다. 허허실실과 타이밍. 허허실실은 뭔가. 정보/비정보 상태의 변칙적인 흐름을 만드는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기인듯 아닌듯 흘려보내는 기술이야 말로 작업의 요지다. 때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다가도, 때론 앞의 정보를 순식간에 뒤엎을만한 애매한 정보를 흘려보낸다. 친구와 연인의 애매한 경계, 바로 그 지점이야 말로 허허실실의 치열한 전장이다. 작업인은 정보의 창과 비정보의 방패를 들고 이 전장을 종횡무진하는 무사다. 창만 쓰는 이는 적의 창에 찔릴 것이요, 방패만 쓰는 이는 지루해하던 적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도 모르고 방패로 얼굴을 가리고 있을 것이다. (물론 소림의 절세 창술을 익히고 돌아온 실력좋은 이는 방패 없이 창만으로도 그 화려한 초식과 육십갑자 내공으로 승리할 수 있을지니, 이러한 고수는 논외로 하기로 하자.) 타이밍은 뭔가. '어떠한' 정보/비정보를 '언제' 흘릴지 판단하는 능력이다. 아기새에게 처음부터 딱딱한(그러나 곱씹으면 맛 좋고 영양가도 높은) 먹이를 던져주면 아기새 거들떠 보지도 않거나, 부리 찢어진다. 자신의 순수한 감정만 믿고 용감무쌍하게 돌진하는 이는,아직 준비되지 않은 상대에게 부담만 줄 뿐이다. 작고 부드러운 정보부터 조금씩 흘려야 감정이란 아기새도 쉽게 소화시키고 무럭무럭 자라지 않겠는가. 또한 녀석이 싫증낼 때가 언제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때그때 호기심을 자극해야 아기새도 낼름낼름 잘 받아 먹지 않겠는가. 고로 이 두 가지 스킬을 완벽히 구사할 수 있는자, 천하를 얻을...이 아니고, 진정한 작업인이 될 수 있을지어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는 매우 어렵다. 왜인가. 작업은 나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도 하기 때문이다. 상대의 작업이 자신의 감정에 침투시킨 바이러스는 혼란을 일으키고, 판단력 저하, 침착성 저하 등 시스템의 전반적인 능력저하를 야기한다. 바이러스를 이겨내지 못한 시스템은 무분별한 정보제공과 부적절한 행위로 자멸하기 쉽상이다. 고로 진정한 작업인은 이 혼란을 오히려 즐거운 흥분으로 여기며,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에너지로 변화시켜 시스템의 업데이트로까지 끌고 갈 수 있어야 한다. 아, 그리고 하나 간과하기 쉬운 것은 작업시 교류되는 정보에서 언어가 차지하는 역할은 생각보다 그리 높지 않다는 사실이다. 취미와 가치관에 대한 수많은 대화(언어)들은 인식->비인식 의 경로를 통해 감정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표정, 눈빛, 우연한 신체접촉 등의 비언어적 신호들은 비인식-> 인식의 경로를 통해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데 이는 이성적 사고를 통해 정리,분류되지 않기 때문에 다른 불순물들과 혼합하여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우연히 스친 손끝에서 상대의 떨림이 몇 hz 였는지가 자신의 가치관에 대한 일장연설보다 더 큰 정보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연애로 가는 길에 있어 감정(열정)은 활성화 에너지와 같다. 반응이 일어나기 위해 넘어야 할 최초의 산 같은거다. 작업이라는 소통의 과정은 그 산을 넘을만큼 서로의 감정을 끌어올릴 수단이고. 하지만 산 넘을 방법이 어디 작업 하나 뿐인가. 술과 같은 촉매를 사용해서 활성화 에너지를 낮추는 이도 있을거고, 절대 경공술을 사용해 상대쯤이야 등에 업고 훌훌 날아 넘는 이도 있을거고, 세월아 네월아 하며 한걸음씩 천천히 오르다 상대가 뒤쳐지면 그 자리에 앉아 한없이 기다려주는 이도 있을게다. 아기새도 별 놈이 다 있다. 상처 받은 아기새는 다양하고 자극적인 먹이보다, 지속적이고 따뜻한 먹이면 족해한다. 금식을 즐기는 놈도, 과식을 즐기는 놈도 있다. 때문에 허허실실과 타이밍을 통한 작업은 이러한 수많은 변수들을 전제한 일반론일 뿐이다. 그러므로 결국 가장 기본적이며 중요한 것은 태도다. 산을 넘는 방법이 어떻든간에 ,상대가 어떤 아기새를 키우던간에, 두 사람이 모두 이 등산을 즐거운 여행으로 생각할 여유만 있다면야, 정보를 공개한들(고백을 한들), 술을 마시며 빠른 반응을 유도한들, 한없이 기다린들, 모두 다 삶의 기쁨 아니겠는가. 상대가 좋은건 죄가 아니다. 좋음을 상대에게 전하는 것 또한 죄가 아니다. 그 정보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지만이 각자의 문제인 것이다.(성공적인 작업-소통-을 위해 정황을 파악하고 상대를 배려할 필욘 있지만) 감정은 자연스럽게 흐르는데, 연애라는 '형식 자체'는 관계를 고정시키고 감정을 묶어 두려한다(실제 관계와 별도로). 이러한 연애의 속성은 그 출발인 작업의 과정에도 양자에게 요구된다. 이는 소유욕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상대와 상대의 감정을 내 것으로 하고 싶은 마음을 조금만 버리고, 자신의 감정에 보다 집중하고 그 흐름 자체를 즐긴다면, 소림비급과 육십갑자 내공이 부럽지 않은 진정한 작업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적절한 때에 적절하게 감정을 전하고 요동치는 감정의 변화 자체를 즐기는 이 진정한 작업인을 일컫는 다른 말은, 상대의 기분을 잘 파악하고 참되게 배려할 줄 아는 진정한 소통인이라면 오버일까. * 별책부록- 연애를 향한 긍정적 징조들 (계속 수집 중) - 꿈에 나온다. - 하루쯤 기분이 괜히 안좋다. - 의견이 다른 부분이 왠지 자꾸 걸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