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용서

narre 2006. 1. 22. 08:52
얼마전에 본 영화 '야수'의 영향인가보다.

어릴 때, 정말 미워했던 두 사람이 꿈에 나타났다.
처절한 복수극도 아니고, 그냥 잡혀와서 벌거벗겨진 다음, 지금까지의 악행을 조사당하고 법의 심판을 받는 장면이었다. 별거 아닌 장면이었지만 내게 강렬했던건, 완전히 잊고 있었던 그 두 이름이, '벌써 내 이름도 잊었어?' '나 XX야' 라는 본인들의 발화로 다시 기억되었던 그 장면. 그 이름이 너무 생생해서 무척 놀랐다. 이름이 생생해지자 당시의 미운 감정까지 너무도 생생하게 다시 떠올라서 두 번 놀랐다. 그 순간 나는 죽을만치 미워하고 괴로워했던 그 때로 다시 돌아갔다.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꿈에서 깨고 나서도 한동안 마음이 불편하다. 악령에 사로잡혔던 영혼이 풀려난 뒤에 느끼는 찝찝함이 이런 느낌일까, 아니 악령인줄 알았는데 실은 그게 내 모습이었을때 느끼는 당황스러움에 가깝다.

내 의식은 이미 한참전에 그들을 이해했고, 용서했다고 생각했는데...
무의식은 아니었나보다.

진심으로 누군가를 용서한다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바꿔말해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미움의 극한까지 가지 못한건지도 모르겠다.
질적 변환을 일으킬만큼의 에너지가 없었는지도.
프리고진의 말처럼, 엔트로피가 극한에 달하면 새롭게 자기조직화했을지도.
찌꺼기가 남지 않을 만큼 다 토해내지 못한건지도.

다 같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