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팬

narre 2005. 1. 12. 15:32


20040424

영화 피터팬의 마지막 장면.

웬디와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오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창 밖에서 지켜보던 피터팬.
약간은 쓸쓸하지만 행복이 담긴 미소를 남기고 떠나려던 차,
자기 앞으로 드리워져 있던 그림자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 웬디는 창문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웬디가 "넌 날 잊을꺼지, 그렇지? ( You will forget me, will you?)" 라고 말했을 때 피터팬의 대답이 어찌나 멋지던지.

"Me ?"

"Forget ?"

"Never !"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잊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성장하지 않는 자에겐 과거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망각이란 단어도 존재하지 않겠지. never!

웬디가 피터를 잊지 않기 위해 아이들에게 피터팬의 이야기를 들려주듯, 문학은 결국은 과거에 관한 것.
과거의 경험과 사유와 느낌이 문학이 되는 것이지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삶 그 자체는 '이야기'가 될 수 없다. 단지 시간이 흘러 현재가 하나의 과거가 될 때 삶은 비로소 '이야기'의 소재가 될 가능성을 지닌다.

하지만 네버랜드에서는 과거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현재가 곧 '이야기'가 되고 '이야기'가 곧 현재가 된다. 때문에 후크는 웬디에게 '피터가 죽었다'로 이야기를 끝맺으라고 윽박을 지르고, '난 요정을 믿어'란 아이들의 함성은 이미 죽어버린 팅커벨을 살리게 되는거지. 같은 이유로 네버랜드에선 모든 이들이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나쁜 놈인지 착한 놈인지 어른인지 아이인지 그런건 중요하지 않다. 그들에게 이야기는 곧 현재니까. 흥미진진한 삶 그 자체니까, 우락부락한 해적도 말똥말똥하게 눈을 뜨고 웬디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 세계는 그렇지 않지. 이야기는 아직은 사회화되지 않은 아이들의 전유물, 계속 잊으면서 성장해온 어른들에겐 이야기는 과거에 관한 시간낭비 판타지일 뿐이다. 아, 이쯤되면 어찌 네버랜드가 그립지 않을쏘냐.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피터팬 컴플렉스란 단순히 성장하기 싫어하는 몸은 어른이지만 정신은 유아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자에 관한 비유라고 생각해왔는데, 마지막 장면의 피터를 보고 나선 생각이 좀 달라졌다.

어쩌면 지금처럼 자꾸만 성장을 강요하는, 결국은 획일화된 방식의 사회화를 강요하는 세계에서는
피터팬 컴플렉스는 하나의 탈주선이자 대안형 인간이 아닐까하고.
지금까지는 개인이든 사회든간에 어린이-> 어른의 과정은 결국 생산력 향상을 목적으로한 일방향적인 흐름이었다.
인류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산업사회로의 성장을 쉼없이 강요해왔고, 당근 그 와중에 필요한 인간상은 물질적 생산성을 담보하는 '어른'(즉 과거에 대해 별 생각않고 가족부양을 위해 꿈을 희생하고 승진을 위해 소심한 성격까지 고치려 노력하는 웬디의 아버지 같은 인간)이었던 거고. 성장과 어른은 이런 물질적 생산력과 뗄래야 뗄 수 없이 말착되어서 모든 이들의 신앙이 될 수 밖에 없었겠지.

하지만 지금에 와서도 과연 그런 사회와 인간이 필요한가.
지구라는 닫힌계의 엔트로피가 한계치에 이르렀는데 더 이상의 성장이 무의미한거야 대충 다 아는 사실.
그렇다면 더 이상의 성장하는 인간, 생산력 향상을 위해 쉼없이 달리는 어른이 여전히 유의미한가.
오히려 피터팬 같은 인간, 네버랜드 같은 사회가 필요한 것 아닐까.
행복한 생각을 하면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상상력이 존재하고, 혈통 중심의 가족이 아닌 또래의 아이들이 모여 니가 아빠하고 니가 엄마하는 대안형 가족이 존재하는 사회. 그리고 그런 인간들.

하지만 아쉽게도 영화는 피터팬과 팅커벨을 제외한 모두가 현실로 돌아가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세월이 흐르면 그들 모두가 어른이 되고 넥타이를 조여매고 쉼없이 달리다, 가끔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서나 피터를 기억하겠지.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도 어른이 되며 잊음을 반복하는거고.
네버랜드에서 쓸쓸해할 피터의 모습에서 왠지 모르게 대안형 공동체에 홀로 남겨진 운동가를 떠올리는건 오버일까나.

암튼 다음에 나올 피터팬 영화는 좀 다른 식의 엔딩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성장의 한계와 더불어 피터팬 컴플렉스도 새로운 의미를 가질 때가 되진 않았나 싶기도 하고.

결론은 피터팬에 관한 새로운 해석까진 아니었어도, 피터팬이 가진 여러가지 함의들은 충실히 살린 영화였다는 것.

땅!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