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우리

필리핀: 오도독 해초샐러드과 산미구엘, 그리고..

narre 2010. 2. 22. 02:06







by: D5000, 손승연

금년 1월에는 필리핀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목적은 외부 사업타당성검토용역 발주를 위한 계약 체결 및 킥오프 미팅이었다.
필리핀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먹을 것이 영 맞질 않아 내도록 고생을 했다. 워낙 음식점에서 선택한 것들이 실패를 하다보니, 나중에는 백화점 푸드코트에 파는 간식거리들을 일이백원 어치 사서 조금씩 맛을 봤는데, 오히려 그 방식이 만족도가 훨씬 높을 정도였다.
그래도 동남아인지라 재래시장에서 사먹는 과일은 신선하고 맛났지만, 아마도 지역물가보다는 많이 비싼 가격에 흥정을 하고는 좋아라 했던 것 같다.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 중 최고는 단연, 해초 샐러드였다. 맥주 안주로 시켜놓고보니 탱글탱글한 자태가 오도독 오도독 군침이 돌았는데, 살짜금 맛을 보는 순간 그 시큼함과 묘한 향취의 완벽한 조화가 오감을 마비시켰고, 먹기 전/후 세계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는 통에 나는 정신줄을 붙잡고 있기 힘들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행복했다. 산미구엘이 있었기에...
평소 맥주바에서도 산미구엘은 잘 먹지 않았는데, 필리핀에선 가격이 저렴한데다(Bar 에서 먹는데도  한 병에 1000원 선이었다), 동남아의 아열대 기후는 얼음처럼 차가운 맥주 한 모금에 천국을 느낄 수 있게 만들어주었기 때문에, 정신없이 산미구엘의 모든 종류를 섭취하며 불콰한 행복을 누렸다. 

여기까지가 나의 첫번째 필리핀 방문에 관한 기억, 그나마 마닐라 인근만 맴돈.
7000여개의 섬으로 나뉘어져, 그 방언만도 백 여개에 달하는데다, 오랜 식민지 통치를 겪은 나라.
잘게 쪼개진 이 국가의 작은 섬에서는 중앙에서 전기공급이 어려워, 하루에 전기가 한 시간 들어오는 곳은 예사이고, 그러다보니 교육/의료시설이 들어오지 못해, 교육 받을 나이가 되면 뭍으로 떠나거나 말레이시아로 불법이주를 하고, 그도 못한 이는 남아 작은 질병을 치료하지 못하고 쉽게 죽어간다. 아직 필리핀에 관해 아는 거라곤, 음식이 안 맞아, 산미구엘 맛있어, 수준이지만, 우리가 하는 신재생에너지 사업이란 것이 그들이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하는데 작은 보탬이 될 수 있을지, 아니면 그들의 풍부한 자원을 이용해 전기값으로 빼가려는 외국인기업의 자기만족인지, 그 고민의 시발점은 저 오도독오도독 해초 샐러드의 진한 향취 속에 아련히 던져 볼 수 있었다.


20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