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한바탕 술

narre 2005. 5. 11. 14:25
기온 탓인가, 습도 탓인가, 논문 탓인가, 여하튼 우울증이 도져서 열시쯤 집으로 내려왔다.
'맥주와 샌드위치를 간단하게 하고 애니매이션 한 편을 보다 잠이 든다'는게 애초의 계획이었으나...
목넘김이 좋다는 맥주의 마지막 한 방울이 부드럽게 목을 넘어가고 있을 무렵, 어디선가 울리는 전화벨소리.
받아보니 선배라고 불리우는 또 한 명의 우울한 작자의 음침한 목소리가 공중을 한참 떠돌다 나의 휴대폰 수신부로 채집되고 있었다.



그리하여, 밤새 술을 마셨다.


.......로 끝나면 깔끔했겠건만.

와인과 꼬냑을 비우고도 모자라 가진돈 탈탈털어(폼은 지갑을 뒤져 천 원짜리 지폐 세장을 찾아냈고, 나는 온 방의 동전을 다 긁어모아 3000원을 만들어냈다.) 맥주 한 패트를 사 마시고는.

농구를 하러 학교 등반.
(예전에 강북에서 술마시고 새벽에 자전거 타고 집까지 온 것도 그렇고, 폼과 술을 마시면 청년물이 된다.)

등반하는 길에 폼은 왕년의 동네친구에게 전화를 걸고.
연구실에 도착해서는 남은 와인 따서 또 한바탕 마시고, 엉망진창 농구를 한참 하다 연구실에서 잠이 들어버렸다.

두어시간쯤 잤나.
일찍 등교한 근숙누나의 놀란 얼굴, 당황한 웃음을 뒤로 한 채 터덜터덜 집으로, 집으로.

그래도 12시 전엔 학교에 왔으니 뭐.


흐린 날이라서 다행이다. 숙취가 심한 날 햇살이 눈부시면 뭐랄까 죄책감 비스무리한 느낌이 들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