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bert Mapplethorpe, 1946~1989

narre 2006. 6. 28. 00:51
메이플소프의 사진은 볼 때마다 묘한 느낌이 든다.
그의 삶에도, 그의 죽음에도, 그의 작품에도 짙게 배어있는 이상한 냄새.
자살한 아버스의 사진도 가지지 못한 어떤 종류의 극한.

그 냄새의 정체가 뭔지 도무지 알 수 없어서 자꾸만 그의 사진을 들여다보게 된다.
불안감과 평온함, 열정과 냉정, 허무와 낙천.

세간에 잘 알려진 그의 사진들(성적인 표현을 담은)보다는 연인이었던 페티 스미스의 사진이나, 꽃 시리즈, 셀프 시리즈에 더 끌리는 것도 같은 이유다. 특히 셀프 시리즈 중에서도 바르트가 극찬을 마지 않았던 바로 그 사진은, 지금껏 내가 본 셀프 중 가장 매력적이다. (헌데 그의 사진은 밤에만 들춰보게 되는 것은 왜일까?)


바르트는 메이플소프의 사진을 보았을 때, 드디어 '자신의' 사진가를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카메라루시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 사진은) 혼과 육체를 함께 갖춘 하나의 존재가 갖고 있는 절대적인 가치에 대해서 생각하도록 만든다. 팔을 벌리고 밝게 미소짓고 잇는 이 청년의 경우, 그 아름다움은 결코 전형적인 것이 아니다. 그의 신체는 프레임의 한편에 극단적을 치우쳐져 있고, 반쯤 밖으로 튀어나와 있지만, 그러나 일종의 경쾌한 에로티시즘을 완성시키고 있다. 이사진은 무거운 포르노그래피의 욕망과, 가볍고, 유쾌한 에로티시즘의 욕망을 구별하도록 자극한다. 요컨대 이것은 아마도 '셔터찬스'의 문제일 것이다. 사진가는 청년의 팔이 적절한 형태로 벌려지고 실로 꾸밈이 없는 형태의 순간을 고정시켰다. 단 몇 밀리의 과부족만 있어도 청년의 추측된 육체는 더이상 호의를 담고 제공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포르노그래피의 육체는 농밀하고 자기를 과시하지만, 그러나 호의를 제공해주지는 않는다. 거기에는 약간의 관용스러움도 없다.-사진가는 욕망의 호기를, 카이로스를 포착한 것이다.


Self Portrait





































































Patti Sm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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