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절

2005. 1. 12. 15:25 |
비가 졸래졸래 오길래 촉촉한 세상 구경도 할 겸해서 슬쩍하니
방을 나섰다. 까만색 츄리닝에 반팔티만 입고 나가려 했더니
조금 춥길래 카키색 점퍼를 하나 걸쳤다.
옷 하나에 금새 늦가을처럼 느껴진다.

몇 달 새에 눈이 많이 나빠졌는지 이젠 안경을 껴도 잘 보이지가
않는다. 누군가는 내가 사람들 관찰하는게 못 마땅하다 그랬으니
다행인건가.. 사물이 흐리멍텅하니 보이는 건 내 세계 뿐이다.
그렇게 이 생각 저 생각하며 슬리퍼를 끌고 다니다 보니 목적지에
도달했다. 가구점이다. 만 이천원 부르는 책장을 저번에 만 원이었다고 바락바락 우기니 만 천원에 주신다.

낑낑대며 책장을 어깨에 짊어지고 오다보니 어깨가 저려왔다.
요즘들어 어깨가 종종 아프다.
그렇게 자유니 욕망이니 떠들어댔으면서도 아직도 제 스스로의
무게하나 감당하지 못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어깨가 아플만도 한가.

책임이란 단어에 대해 종종 생각한다. 예전엔 중,고등학교 윤리
교과서에나 나오는 이야기라며 대학에 들어온 뒤론 콧방귀끼며
무시하고 살았었는데, 그렇게 전통적으로 답습될 뿐인 도덕과
윤리에 매이는 건 웃기는 일이라며 나는 자유롭네 하며 딩가딩가
했었더랬는데, 슬슬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때와는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책임의 무게에 다리를 후들거리게 된다. 뭉뚱그려 생각
하는 나의 사고습관이 인습의 미명아래 모조리 같은 것으로 다
묶어버린 탓이다.

관계에서의 책임, 내 감정에의 책임. 밖으로 쏟아져 나온 내 행동과
감정들에 추수시기의 감자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녀석들을
바라보며 한 편으로는 내 수확의 무게에 기뻐하고 한 편으로는
그걸 지고갈 생각에 버거워한다.

다시 자유를 생각해 본다. 철학개론을 가르치는 한 선생님은
그냥 '자유'란 것은 관념적이고 겉 멋어린 단어일 뿐이라며
'무엇으로부터의 자유'인지가 구체화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나의 자유는 무엇으로부터의 자유인가.
인습,편견등 식상한 단어들이 떠오르다가는 이내 허랑해지고 만다.
생각해보면 나는 그것을 위해 무언가를 건 적이 그다지 없다.
팔랑팔랑한 자유의 가벼움만을 절감할 뿐이다.

쿤테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책을 통해 가벼움과
무거움에 대해 한참을 궁시렁대던데.. 아무리 생각해도 무게없는
삶은 한 번 날아오를 순 있으나 착륙할 방도가 없다.
그저 헬륨풍선처럼 팽창하며 붕붕 떠오르다 어느 높이에서
펑하고 터져버릴 뿐이다.
식물이 대지위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며 누리는 자유란
어떤 것일까. 태양으로부터 받은 에너지만큼 산소를 만들어내며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살아가는 그들의 자유를
본받고 싶다.

식물성 자유.

이번 가을은 한 곳에 묶어 두었던 이런 저런 짐들을 풀어서는
이런 저런 기준으로 나눠도 보고 무게도 재어본 뒤
정갈하게 서랍장에 정리하며 보내야겠다.

아직은 내게 무언가를 찾아헤맬 자유는 남아 있지 않은가.

쉽게 밝아지고 가벼워지진 않는 발걸음이지만은 토닥거려가며
한걸음씩 옮겨본다. 더욱 저려오는 어깨지만 이 책장에 쌓아놓을
책들을 생각하며 힘을 줘본다.

개천절이라는데 하늘은 아직 열릴 생각을 하질 않는다.
이도 저도 아니고 그저 뿌연 하늘이 왠지 밉상이다.

차라리 비라도 올 것이지.

2002개천절
Posted by nar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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