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

일기 2005. 11. 8. 23:43 |
어릴때 친구가 거미를 키웠다. 알록달록한 무늬가 예쁜 커다란 호랑무늬 거미였다. 기른지 한달쯤 되었나. 친구가 빨리 와 보라고 그래서 달려갔더니, 글쎄 이 거미가 새끼를 친 것이었다. 베란다에 있는 직육면체의 반듯한 수조가 쬐그만 거미들로 바글바글했다. 곤충채집이 유일한 취미던 당시의 나도 징그러울 정도였다.  유리 뚜껑이 꽉 닫혀있었지만, 한 두마리씩 계속 밖으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무리 꽉 닫아도 틈새를 막아도, 그 쬐끄만 거미들을 막을 수가 없었다. 결국 친구는 부모님께 엄청나게 혼이 났고, 거미는 방출되었다. 그러고도 한동안은 집안이 거미들로 버글거렸다고 한다. 아마 일고 여덟살 때 일이었을텐데... 왠지 모르게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있다.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든다. 내 무의식이 그 베란다에 있던 직육면체 반듯한 수조고, 그 안에 커다란 호랑무늬 거미가 살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아니지, 거미는 죽었다. 번식을 끝낸 커다란 거미는 제 몸을 새끼들에게 먹이로 내어주고 이미 죽었지만, 수천마리의 새끼거미들이 바글바글 내 무의식을 돌아다니다 한 마리씩 수조 밖으로 나오고 있는 것 아닐까. 수조를 꼭 닫아도 새끼거미의 지속적인 탈출을 도무지 막을 수 없고.. 더 무서운건 아직 그 안에 바글거리고 있는 수천마리의 거미들의 존재.
Posted by nar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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