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일에 옳고 그름이 어디 있겄냐. 살인도, 방화도, 심지어 하이재킹도, 상처와 아픔과 물리적 피해가 있을 뿐 선악은 없는게지. 어떤 시스템이든 각 구성요소들을 통제할 수 있는 자기유지적 장치가 필요하니까 법도 만들고 윤리도 만들고 예의 같은 것도 생기고 그런건데, 자꾸 이걸 가지고 행위의 (절대적)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고 하니께 재미가 없는거거든. 그냥 법이면 법적으로 옳고 그른거고,윤리면 윤리적이거나 윤리적이지 않은거고,예의에 어긋나면 그냥 예의에 어긋난거고, 단지 그 뿐인거지 그걸 확대해서 절대적 선악인것처럼 생각하면 안된단 말야.(사는데 그런게 필요없단건 아니고 적용범위를 명확히 하자는거얌.) 어떻게 보면 법 윤리 예의 이런건 다 선입견에 불과한건데 말이지. 자기가 선입견을 가지고 있단 것도 모를 때가 많단 말이야.
특히 관계에 있어서도, 올바른 형태를 하나 그려놓고 거기에 맞추려고하면 자꾸 문제가 생기는건데, 이상하게 그렇게 하려고 한단 말야. 물론 삐죽삐죽 튀어나온 것들은 날카로우니까 찔리면 아프지. 그럼 피도 나고 그러거든. 그럼 막 호들갑이란 말야, 피난다, 아프다, 어쩔꺼냐, 그러지 말아라. 올바른 형태라고 생각하는건 다른게 아니라 가장 안전한 울타리인거지. 그 안에 있으면 따뜻하고 보호받는 것 같은. 근데 사실 그 울타리 안에 있는건 따뜻함과 보호가 아니라, 無인거거든. 그냥 아무것도 없는거지.
세상을 행복과 불행으로 양분한다면, 아마 불행 속에는 오직 無만 존재할거야. 슬픔과 아픔은 실은 행복의 부분집합이 아닐까. 걔네들이야 즐거움과 건강함이랑 항상 붙어다니니까. 단지 외로움 정도만이 불행과 행복 사이에서 살짝 갈등하고 있을지도 몰라. 암튼 그러니께 무언가가 있다는건 썩 나쁘진 않은거라고. 그니까 안전하지 않다고 해서 삐딱하게 보는 사람은 그냥 '나 심심한 사람이요'라고 하는 것 밖에 안되는거야.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관계는, 아무 것도 없는 관계의 다른 말도 되거든.
그럼 뭐냐. 암말도 할 수 없는거냐. 그건 또 아니지. 옛날에 사르트르가 그랬지, 옳고 그름은 판단할 수 없어도 선택에 있어 성실했는지, 게을렀는지는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다고. 바꿔말하면 항상 깨어있으라는거지. 니가 진짜 원하는게 뭔지 항상 물어보라는거지. 그럼 사회적으로 주입되고 강요되는 것들이 대충 떨어져 나가지 않을까나. 어차피 한 번 사는거 엄마,아부지,배우자,친구들이 좋아하는거 해주면서 살다가는 다음 삶을 기약하는 수밖에. 관계에 있어서도 그래. 깨어있는 만남이라면 때론 어쩔 수 없는 헤어짐도 있는거지. 상처주고 미워하고, 상처받고 미움 받아도 그건 그냥 그런거지. 누가 잘했다 못했다는 없는거잖아. 자꾸 착한놈 되려고 하니까 억압이 생기고 뭔가 비뚤어지는게야. 그저 깨어있는 성실함이면 충분할 지어이다.
근데 건 또 그래. 항상 깨어있을 수도 없는 것 같아. 깨어있으려면 에너지가 필요하거든. 그차나. 컴터도 대기상태에 들어가는 전력과 활성화 상태에 들어가는 전력이 다른건데, 항상 활성화상태로 켜놓으면 무슨 무한 발전도 아니고 힘들지. 정말 피곤할 땐 깨어있을 수 없는 것 같아. 잠도 좀 자줘야지. 그럼 어쩌냐. 자기가 지금 깨어있지 않다는걸 알고, 그럴 수 없다는걸 알고, 인정하고 받아들여야지 뭐. 아는게 중요한거니까. 지금의 나는 그렇구나. 뭐 그렇게 조금 쉬고 다시 또 성실한 선택의 장으로 가면 되는거니까. 불안해 할 필욘 없는거야. 스스로 선택하는 인간은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으니까, 혹시 늦지나 않을까 조급해할 필요 없는거야.
어쨌든 모든 인간의식은 죽음으로 자신의 삶-그 수많은 선택들-에 대한 책임을 다한다.
못다한 책임이 있으면 의식이 아니라 영혼이 지겠지 뭐 -_-
특히 관계에 있어서도, 올바른 형태를 하나 그려놓고 거기에 맞추려고하면 자꾸 문제가 생기는건데, 이상하게 그렇게 하려고 한단 말야. 물론 삐죽삐죽 튀어나온 것들은 날카로우니까 찔리면 아프지. 그럼 피도 나고 그러거든. 그럼 막 호들갑이란 말야, 피난다, 아프다, 어쩔꺼냐, 그러지 말아라. 올바른 형태라고 생각하는건 다른게 아니라 가장 안전한 울타리인거지. 그 안에 있으면 따뜻하고 보호받는 것 같은. 근데 사실 그 울타리 안에 있는건 따뜻함과 보호가 아니라, 無인거거든. 그냥 아무것도 없는거지.
세상을 행복과 불행으로 양분한다면, 아마 불행 속에는 오직 無만 존재할거야. 슬픔과 아픔은 실은 행복의 부분집합이 아닐까. 걔네들이야 즐거움과 건강함이랑 항상 붙어다니니까. 단지 외로움 정도만이 불행과 행복 사이에서 살짝 갈등하고 있을지도 몰라. 암튼 그러니께 무언가가 있다는건 썩 나쁘진 않은거라고. 그니까 안전하지 않다고 해서 삐딱하게 보는 사람은 그냥 '나 심심한 사람이요'라고 하는 것 밖에 안되는거야.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관계는, 아무 것도 없는 관계의 다른 말도 되거든.
그럼 뭐냐. 암말도 할 수 없는거냐. 그건 또 아니지. 옛날에 사르트르가 그랬지, 옳고 그름은 판단할 수 없어도 선택에 있어 성실했는지, 게을렀는지는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다고. 바꿔말하면 항상 깨어있으라는거지. 니가 진짜 원하는게 뭔지 항상 물어보라는거지. 그럼 사회적으로 주입되고 강요되는 것들이 대충 떨어져 나가지 않을까나. 어차피 한 번 사는거 엄마,아부지,배우자,친구들이 좋아하는거 해주면서 살다가는 다음 삶을 기약하는 수밖에. 관계에 있어서도 그래. 깨어있는 만남이라면 때론 어쩔 수 없는 헤어짐도 있는거지. 상처주고 미워하고, 상처받고 미움 받아도 그건 그냥 그런거지. 누가 잘했다 못했다는 없는거잖아. 자꾸 착한놈 되려고 하니까 억압이 생기고 뭔가 비뚤어지는게야. 그저 깨어있는 성실함이면 충분할 지어이다.
근데 건 또 그래. 항상 깨어있을 수도 없는 것 같아. 깨어있으려면 에너지가 필요하거든. 그차나. 컴터도 대기상태에 들어가는 전력과 활성화 상태에 들어가는 전력이 다른건데, 항상 활성화상태로 켜놓으면 무슨 무한 발전도 아니고 힘들지. 정말 피곤할 땐 깨어있을 수 없는 것 같아. 잠도 좀 자줘야지. 그럼 어쩌냐. 자기가 지금 깨어있지 않다는걸 알고, 그럴 수 없다는걸 알고, 인정하고 받아들여야지 뭐. 아는게 중요한거니까. 지금의 나는 그렇구나. 뭐 그렇게 조금 쉬고 다시 또 성실한 선택의 장으로 가면 되는거니까. 불안해 할 필욘 없는거야. 스스로 선택하는 인간은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으니까, 혹시 늦지나 않을까 조급해할 필요 없는거야.
어쨌든 모든 인간의식은 죽음으로 자신의 삶-그 수많은 선택들-에 대한 책임을 다한다.
못다한 책임이 있으면 의식이 아니라 영혼이 지겠지 뭐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