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2006. 4. 27. 10:28 |
보통 기분이 가라앉으면, 대신에 정신은 좀 명료해진다는 느낌이 있는데,
최근엔 기분이 가라앉으면, 정신도 가라앉아서 그저 흐릿해질 뿐이다.

흐릿하다고 쓰고나니, 어제 꿈 생각이 난다.

어제 꿈에선 바이크를 타고 밭두렁을 달렸다. 예전에 탔던 것처럼 짙은 푸른빛을 띄는 녀석이었다.
논밭을 지나 끝없이 숲으로 이어지는 좁은 외길을 달리면서, 목적없는 서두름에 초조했다.  바이크는 자꾸만 쓰러졌고, 나는 그때마다 그 무거운 녀석을 일으켜세워서 다시 시동을 걸곤 했다. 안개가 짙어서 시야가 흐리고, 눈썹 아래엔 이슬이 맺혔다. 슬픔처럼 고요한 안개였다.
무엇 때문에 달리는건지, 어디로 가고 있는건지 순간순간 생각이 나질 않았다.
다만 그 끝에 몸을 웅크리고 떨고 있는 내가 나오지 않을까 두려웠다.
조급함과 두려움. 두 가지 느낌만이 그 구체적인 실체없이 마음을 무겁게 짖눌렀다. 하지만 이상하게 숲길의 상쾌함만은 기억에 남는다. 모든 느낌들이 안개가 얼굴에 와닿는 감촉처럼, 촉각적으로 느껴졌다. 두려움이든 조급함이든 상쾌함이든. 오히려 냄새나 바람소리 같은 후각과 청각적인 감각들은 시각적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기묘한 느낌으로, 기묘한 감각으로 어딘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장소에 도착해서, 중요하지 않은 일을 했다. 그렇게 꿈이 끝났다.

1시엔 교수님과 면담이다. 서둘러 준비해야겠다.
Posted by nar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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