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흘리는 남자

일기 2005. 11. 26. 18:36 |


언제였더라,
영화 <그녀에게>에서 눈물 흘리는 남자를 보며, 참 멋지다고 생각했었다.
그만큼 자신의 감정을 거르지 않고 표출하면서, 이 땅의 남성사회를 살아가는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시대엔 격한 감정은 아예 느끼지 않거나, 잘 거른 후 주변에 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 갈무리하는 것이, 예의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나는 어릴적부터 너무도 예의바른 인간으로 길러졌다.
여섯살 때부터 동네에서 인사 잘하는 아이로 유명했고, 존댓말이 반말보다 열배는 편하고, 눈웃음 지으며 대화하는건 기본에, 상대가 어떻게 느끼는지에 대한 눈치까지 빠른 편이다.
인사와 웃음은 80이상 진심이지만, 살아오며 어느새 나머지 20도 덕지덕지 묻어버렸다.
덕분에 어느 집단이든 자연스레 잘 적응하고, 누구도 크게 부담스럽게 느끼진 않는 그런 인간이 되었다.
그런 스스로에게 충분히 만족하고 살아왔다. 진심인 80은 종종 나머지 20마저 진심인 것처럼 느끼게 했다.

하지만 그 20에 대해 재발견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그 계기는 20이 양적인 문제가 아니라, 질적인 문제임을 깨닫게 했다.
20은 단단한 껍질처럼 고정된 형상을 이루어, 나머지 80을 그 모양에 그대로 맞추게 했던 것이다.
마치 토마토의 속살이 귤껍질 안에 들어있는 것처럼.

그 계기로 인해
그 20의 껍질은 스스로 균열이 갔고, 80은 세어 나오기 시작했다.
예전이라면 다시 보수공사를 하고, 완벽한 형상을 재건축했을 것이지만.
이번엔 그냥 그대로 놓아두었다.

덕분에 지금의 나는 스스로도 종잡을 수가 없다.
예측과 판단이란게 힘이 든다.
그리고 우선 그런 자신에게 익숙하지가 않다.
그래서 놓아두는 것말곤 대처법도 모른다.
타인이 불편해할 수 있다는 강박도 크다.
그건 진심으로 타인을 생각함에서 오는 미안함이기도 하고, 평가에 대한 두려움이기도 하다.

뭐, 좀 더 시간이 흐르면 어떻게든 되겠지, 난 다만 어떤 태도를 취할 수 있을 뿐.
어떤 흐름으로 어디로 흘러갈지는 80의 문제다.

그래서 암튼 거시기.

나는 곧잘 눈물을 흘리는, 그것도 아무런 맥락없이, 그런 남자다고, 지금.

<그녀에게>와는 조금 다르지만.
Posted by nar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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