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문제

일기 2005. 12. 15. 14:35 |
그리 오래 만나지 못한 커플이 헤어졌단 이야기를 들었다.
그 경위인 즉, 여자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남자가 여자의 휴대폰을 '사람찾기'에 등록하고, 그 사실을 숨겼다가 결국 발각되었다는 것이다. (사람찾기에 등록하면 휴대폰이 켜져있는 상황에선 언제나 그 사람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게 된다.)
당연히 여자는 결별을 선언했고, 남자는 울며불며 매달렸으나 관계는 그걸로 끝이었다. 여자는 남자에게 태도와 감정에 있어 믿음을 주지 못했고, 남자는 그 결핍을 상대를 속여서까지 메우려 했다. 발각당하지 않더라도 '사람찾기'를 통해 쏟아져 들어올 수많은 사실과 오해의 정보들 속에 결국 가장 괴로운 것은 자신일진데.

연인들은 언제나 믿음의 문제로 다투고 괴로워하고 고통받는다.
믿음을 주지 못해서, 믿음을 가지지 못해서, 믿음을 저버려서...
그 과정에서 상처 받은 이들은 결국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못하게 되고, 때문에 설혹 누군가와 함께 있더라도 외로워한다.
혼자 있어 외로운건 아스라히 슬픈 것이 나름의 맛이 있는데,
함께 있어 외로운건 그저 아플 뿐이니...

risk가 두려워 편익을 취하지 못하는 게임.
risk를 감수하지 않으면 적어도 0일 순 있지 않느냐고 착각하는 게임.
(감수하지 않을수록 risk는 자가증식한다. 0인 상태 또한 닫힌계로서 완전하다고 착각하는 것일진데, 실제 사람은 존재하기 위해서 열린계일 수 밖에 없으므로 이러한 착각은 스스로를 취약하게 만들 뿐이다 .)

결국 조건없이 믿는 것이 자신에게 가장 큰 행복일진데.
상대를 믿을 때 오는 행복이 얼마나 큰 지는 다들 알면서 그러지 못하는건

상대가 믿음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상처를 통해 새로 깨닫고, 더욱 성숙할 자신. 함께라면 더없이 행복하나 홀로여도 행복할 자신.
서로에게 길들여지는 과정이 한없이 편안하나, 그렇지 않은 때의 날이 서있는 느낌도 추운날 정신이 번쩍 드는 것처럼 기분좋아할 자신.

스스로에 대한 믿음 속에선, 두려움은 싹을 틔우지 못한다.

그리고.
자신을 믿는 인간만이 상대에게도 믿음을 줄 수 있지 않을까, 라고 나는 또한 생각한다.
신뢰의 출발은 언제나 상대가 아닌 자신이다.

'여유'는 자신을 믿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축복.
상대가 편히 쉴 수 있는 포근한 공간.

당신에겐 그러한 공간이 있습니까.
Posted by nar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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