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配慮)-마음의 나눔 - 여산
글 2006. 6. 28. 00:36 |평소 관계에 있어서 월권과 오만, 그리고 배려(配慮)를 이야기하지만, 듣는 이들에 따라서는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배려'에 있어서 실감이 오지않는 듯하다.
배려를 내 식으로 말한다면 ‘땡기는 대로 살라’는 것이고, 굳이 풀어서 말한다면 글자 그대로 ‘마음 나누기’이다. 마음을 나누어 줄 수 있음이다. 옛 기록에 보면 ‘깨달음이란 별 것 아니다. 배려일 뿐이다’라고 말한 선사(禪師)도 있다. 지극히 동감할 수밖에 없는 표현이다.
땡기는 데로 산다는 것은 자신의 감정이나 욕구의 ‘주인이 되어서 살라’는 말이다. 마음 가는 데로 끌려 다니지 말고 자기 자신의 마음에 주인이 된다는 것. 그렇기에 많은 이들이 오해하듯 자신의 욕망에 빠져 그것을 채우기에 급급한 삶은 정확히 말하면 땡기는 데로 사는 것이 아니라 땡겨지는 데로 사는 삶이다.
많은 이들이 마음을 내어 무엇을 하려고 하다가 상황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접어야 할 때는 은근히 스트레스 받기도 하고 속으로 열 받아한다. 그것은 자의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상황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기에 최소한 그 상태에서의 그의 삶은 자신보다는 상황이 주인이 되어 대신 살고 있는 셈이다.
누구나 알듯이 관계에서 배려한다는 것은 자신이 중심이 되어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입장이 되어 상대를 염두에 두며 대하는 것이다. 상대에게 마음을 나누어 주는 것이다.
상대에게 마음을 나누어 준다는 것은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도 ‘상대를 위해 즐겁게 자신의 마음을 거두어들일 수 있음’이다. 자신의 마음을 내었다가도 타인의 입장을 생각해 한번 일으킨 스스로의 마음을 거두어들일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땡기는 대로 자신의 마음의 주인이 되어 사는 자의 참 모습이자 그것이 바로 상대에 대한 배려가 아니겠는가.
관계 속에서 배려하는 자만이 그 관계를 통하여 변화할 수 있다.
우리는 배려를 할 때 상대의 모습을 통해 내가 변하고, 또 상대는 나의 모습을 통해 변화함으로서 서로 상대방에 맞추어 같이 변화하니 그 결과 서로 어우러지는 모습이 저절로 될 수밖에 없다.
깨달음이란 것이 별 것 있었던가. 자신의 일상의 삶 속에서 사람과 자연과 어우러져 밥먹고 잠자며 사는 것이라 한다.
사람과 자연에 대하여 배려하여 사람과 자연에 따라 내가 함께 변화하고, 그에 따라 저절로 내가 사람과 자연과 어우러지게 되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환경과 생태를 아무리 외쳐도 기본 정신은 역시 이것 외에 없다. 이것을 화엄경에서는 중생수순(衆生隨順)이라 하지 않던가.
삶 속에서 돈과 시간을 나누어 주는 것 보다 더 좋은 것은 우리 각자의 마음을 상대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다.
http://www.cyworld.com/zarita
배려를 내 식으로 말한다면 ‘땡기는 대로 살라’는 것이고, 굳이 풀어서 말한다면 글자 그대로 ‘마음 나누기’이다. 마음을 나누어 줄 수 있음이다. 옛 기록에 보면 ‘깨달음이란 별 것 아니다. 배려일 뿐이다’라고 말한 선사(禪師)도 있다. 지극히 동감할 수밖에 없는 표현이다.
땡기는 데로 산다는 것은 자신의 감정이나 욕구의 ‘주인이 되어서 살라’는 말이다. 마음 가는 데로 끌려 다니지 말고 자기 자신의 마음에 주인이 된다는 것. 그렇기에 많은 이들이 오해하듯 자신의 욕망에 빠져 그것을 채우기에 급급한 삶은 정확히 말하면 땡기는 데로 사는 것이 아니라 땡겨지는 데로 사는 삶이다.
많은 이들이 마음을 내어 무엇을 하려고 하다가 상황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접어야 할 때는 은근히 스트레스 받기도 하고 속으로 열 받아한다. 그것은 자의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상황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기에 최소한 그 상태에서의 그의 삶은 자신보다는 상황이 주인이 되어 대신 살고 있는 셈이다.
누구나 알듯이 관계에서 배려한다는 것은 자신이 중심이 되어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입장이 되어 상대를 염두에 두며 대하는 것이다. 상대에게 마음을 나누어 주는 것이다.
상대에게 마음을 나누어 준다는 것은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도 ‘상대를 위해 즐겁게 자신의 마음을 거두어들일 수 있음’이다. 자신의 마음을 내었다가도 타인의 입장을 생각해 한번 일으킨 스스로의 마음을 거두어들일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땡기는 대로 자신의 마음의 주인이 되어 사는 자의 참 모습이자 그것이 바로 상대에 대한 배려가 아니겠는가.
관계 속에서 배려하는 자만이 그 관계를 통하여 변화할 수 있다.
우리는 배려를 할 때 상대의 모습을 통해 내가 변하고, 또 상대는 나의 모습을 통해 변화함으로서 서로 상대방에 맞추어 같이 변화하니 그 결과 서로 어우러지는 모습이 저절로 될 수밖에 없다.
깨달음이란 것이 별 것 있었던가. 자신의 일상의 삶 속에서 사람과 자연과 어우러져 밥먹고 잠자며 사는 것이라 한다.
사람과 자연에 대하여 배려하여 사람과 자연에 따라 내가 함께 변화하고, 그에 따라 저절로 내가 사람과 자연과 어우러지게 되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환경과 생태를 아무리 외쳐도 기본 정신은 역시 이것 외에 없다. 이것을 화엄경에서는 중생수순(衆生隨順)이라 하지 않던가.
삶 속에서 돈과 시간을 나누어 주는 것 보다 더 좋은 것은 우리 각자의 마음을 상대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다.
http://www.cyworld.com/zari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