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리야르 전시회

일기 2005. 6. 6. 02:57 |


과외 두개를 마치고, 관악구 바깥 바람도 가끔은 쐬어 줘야하지 않겠냐는 생각에 경복궁 대림 미술관까지 왕림.
보드리야르 사진전을 관람했다.

전문 사진가들의 사진처럼 기술적인 완벽함 같은 것은 없었지만, 확실하게 전해져오는 '느낌'과 '낯설음'이 있었기 때문에 즐겁게 관람할 수 있었다. 대림미술관이란 전시장 자체도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안내인 안 보는 틈을 타 (작품이 아닌 전시장) 사진도 찍으며 노닥노닥.


결국 내일이 연휴임에도 불구하고 아침에 있는 조모임을 위해 일요일 밤은 연구실에서 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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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는 보드리야르의 말

그의 이론에 따르면 오늘날은 이미지가 자체의 예술적 존재를 잃고 기능적 표현도구가 되었으면서도 이미지의 범람으로 인해 그 기능을 상실하였다. 보드리야르는 이미지로서의 소통에 관한 부정적인 면은 이미지 자체의 순수성을 찾음으로써 회복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미지를 해독해야 할 기호가 아닌, 이미지 밖의 현실의 다른 어떤 것에 의존하지 않는 독자적 존재로서 시각적 즐거움으로 소비되어질 수 있을 때 긍정적인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그는 이미지의 생산 주체를 사진을 찍는 사람이 아닌 대상으로 보았다. 찍는 사람이 대상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 찍히기를 원하는 대상이 우리의 눈을 유혹하여 우리로 하여금 찍게 한다고 보았다. 그렇게 찍힌 사진의 이미지는 그것이 찍히는 때로부터 찍힌 대상과 그 순간과 카메라 셔터를 누른 사람으로부터 독립되어진다. 시간의 흐름을 되돌릴 수 없는 것과 같이. 이 독립된 이미지에게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이미지가 우리에게 설명하지 않을 때, 본질적인 이미지로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사진은 실재의 기록도 순간의 포착도 아닌 의미 없는 '무'의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다.

보드리야르는 사진을 찍는 순간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렌즈를 통해 보여지는 이미지 자체의 형태만을 바라본다. 그에게서 사진 찍기와 그 결과물인 사진은 단순 유희로서 그의 이론을 보여주는 실례이다. 그러나 그가 찍은 사진 이미지와 그의 이론을 결부하는 것은 그 이미지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어서 그의 순수한 이미지 생산의 바람과 위배되는 것이다. 보드리야르의 사진을 그의 이론의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고, 보여지는 그 자체 그대로 즐기는 것이 진정 보드리야르의 이론을 적용해보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Posted by nar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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