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에야 나는구나. 풋풋하면서 포근한 봄냄새, 봄의 밤이 내뿜는 냄새.
내 경우엔 가장 강렬한 데쟈뷰를 불러일으키는 건 무엇보다도 냄새인데, 특히나 봄은 여러가지 일들이 시작되었던 계절이라 미묘한 냄새의 차이에 따라 각기 다른 추억들의 향을 맡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봄이되면 무엇보다도 냄새에 예민해지고, 냄새에 따라 그때의 기분이 달라진다.
평소에 무심코 지나치던 곳에서도 가만히 멈춰서서 깊은 숨을 들이키곤 하는 계절이 봄인 것이다.
습도 20% 섭씨 10도 정도의 건조하면서도 선선한 공기, 그리고 머리카락이 가늘게 흔들릴 정도의 바람과 뺨에 따뜻함이 느껴질 정도의 아침에 나는 냄새는 새내기때 처음 친구들이랑 옷을 사러 갔던 날의 냄새.
Kevin Kern의 'Sundial dreams'가 흘러나오는 구름 한 점없이 화창한 오후 3시의 냄새는 친구들끼리 우르르 모여 영화 마실 갔던 날의 냄새. 뭐 이런 식의 냄새가 봄에는 한 열가지쯤 되려나.
마침 오늘 밤의 약간 선선하고 적당히 바람이 스치는, 달이 아주 밝은 밤의 냄새도 그 열가지에 포함되는지라 11시가 넘어 과외를 마치고 돌아오는 힘든 길도 마냥 기분이 좋았다. 이런 냄새를 매일같이 맡을 수만 있다면 지치고 피곤한 하루라도 그저 웃어넘길 수 있을것 같았다. 뭐, 벚나무 향이 조금만 섞여있었더라면 이란 아쉬움이 들긴 했지만 말이다.
그때는 이미 막차 시간이 약간 지나있었기 때문에, 긴가민가하는 심정으로 버스 정류장에서 한참동안 심호흡을 하며 맘껏 냄새를 즐겼다. 텅빈 버스 정류장 앞으론 덩치좋은 차들이 매연을 내뿜으며 지나갔지만, 다행히 뒤로는 산을 등지고 있었기 때문에 냄새는 좋았다. 그렇게 아이처럼 들떠서는 혼자 베실거리며 정류장을 배회하고 있던차에 운좋게 '막차'란 표지판을 내건 92-2번이 내 앞에 멈춰섰고, 나는 괜시리 여유를 부리며 버스에 올라탔다. 하지만 즐거움도 잠시, 막차의 분위기가 대개 그렇듯 조용하고 내려앉은 공기에 서서히 나는 침식당하기 시작했다. '그래, 이렇게 끝나가고 있는거지' 다음날 수업이 있든 말든 야밤에 친구들과 한강으로 놀러가던 날들도,눈에 잘 띄는 곳을 차지하기 위해 캠퍼스 곳곳에 숨어있다 땡하는 종소리와 함께 선거 자보를 붙이던 밤들도, 종점을 향해 달리는 마지막 버스처럼 끝나가고 있는거지. 냄새 따윈 추억이 타고 남은 재에 불과한거야.
그렇게 생각하자 목이 타고 답답해서 숨을 쉬기 조차 힘들게 됐다. 달밝은 날의 조울증은 왜이리도 심각한건지. 어찌됐든 답답한건 사실이었으므로 나는 옆의 창을 있는 힘을 다해 힘껏 열었다. 창은 이상하도록 무거워서 아주 조금 열렸는데, 그 작은 틈으로도 시원한 바람이 순간적으로 와락 쏟아져 들어왔다. 그래, 그 봄냄새를 가득 담은 바람이 말이다. 나는 다시 폐 깊숙히까지 숨을 들이켰고 조금은 위로받았단 느낌이 들었다. 그리곤 서서히 내릴 준비를 했다. 생뚱맞지만 그리 슬프진 않았다. 다음엔 버스의 문을 열고 내리면 되는거야. 벨만 누르면 자동으로 문까지 열리는 간단한 일이지. 그리곤 계단을 내려가면 되는거지. 역시 간단한 일이야.
버스에서 내리자 버스는 정말로 나를 스쳐지나가 버렸다. 그저 나따위 내린건 아무것도 아닌 일이란 것처럼 종점을 향해 내달려 버렸다. 나는 조금 화가 났지만 역시나 냄새가 좋았으므로 한 번 참기로 했다. 그리고 내친김에 뜀발질을 하기로했다. 우선 몸 안에 있는 피곤한, 풀죽은, 찌들린 공기가 완전히 빠져나갈 때까지 크게 숨을 내쉰후 봄의 밤이 내뿜는 공기를 맘껏 들이켰다. 그것은 개나리와 진달래와 벚꽃이 피어날 그 모든 가능성을 담고 있는 공기였다. 그렇게 새로운 공기로 폐가 충만해 졌을때 오른발의 앞꿈치에 강하게 힘을 줬고 드디어 내 몸은 달리기 시작했다. 지친 모습으로 집으로 향하는 고등학생들의 얼굴을 뒤로하고, 옆에 있는 총각과도 비교하지 않고, 미친놈보듯 바라보는 아저씨의 시선도 신경쓰지 않은채 집까지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달렸다. 하늘을 보며 달렸다. 그러면서 생각했지.
'달엔 정말 토끼가 살고 있는 것 같아...'
후훗 -_-
봄이라 즐겁다.
많은 것들이 풋풋한 냄새만 남기곤 지나쳐왔지만, 여전히 나는 봄이되면 그것들을 들이마실 수 있고, 이렇게 달릴 수 있으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밤산책이 가장 즐거운 계절은 봄인 것 같아.
내 경우엔 가장 강렬한 데쟈뷰를 불러일으키는 건 무엇보다도 냄새인데, 특히나 봄은 여러가지 일들이 시작되었던 계절이라 미묘한 냄새의 차이에 따라 각기 다른 추억들의 향을 맡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봄이되면 무엇보다도 냄새에 예민해지고, 냄새에 따라 그때의 기분이 달라진다.
평소에 무심코 지나치던 곳에서도 가만히 멈춰서서 깊은 숨을 들이키곤 하는 계절이 봄인 것이다.
습도 20% 섭씨 10도 정도의 건조하면서도 선선한 공기, 그리고 머리카락이 가늘게 흔들릴 정도의 바람과 뺨에 따뜻함이 느껴질 정도의 아침에 나는 냄새는 새내기때 처음 친구들이랑 옷을 사러 갔던 날의 냄새.
Kevin Kern의 'Sundial dreams'가 흘러나오는 구름 한 점없이 화창한 오후 3시의 냄새는 친구들끼리 우르르 모여 영화 마실 갔던 날의 냄새. 뭐 이런 식의 냄새가 봄에는 한 열가지쯤 되려나.
마침 오늘 밤의 약간 선선하고 적당히 바람이 스치는, 달이 아주 밝은 밤의 냄새도 그 열가지에 포함되는지라 11시가 넘어 과외를 마치고 돌아오는 힘든 길도 마냥 기분이 좋았다. 이런 냄새를 매일같이 맡을 수만 있다면 지치고 피곤한 하루라도 그저 웃어넘길 수 있을것 같았다. 뭐, 벚나무 향이 조금만 섞여있었더라면 이란 아쉬움이 들긴 했지만 말이다.
그때는 이미 막차 시간이 약간 지나있었기 때문에, 긴가민가하는 심정으로 버스 정류장에서 한참동안 심호흡을 하며 맘껏 냄새를 즐겼다. 텅빈 버스 정류장 앞으론 덩치좋은 차들이 매연을 내뿜으며 지나갔지만, 다행히 뒤로는 산을 등지고 있었기 때문에 냄새는 좋았다. 그렇게 아이처럼 들떠서는 혼자 베실거리며 정류장을 배회하고 있던차에 운좋게 '막차'란 표지판을 내건 92-2번이 내 앞에 멈춰섰고, 나는 괜시리 여유를 부리며 버스에 올라탔다. 하지만 즐거움도 잠시, 막차의 분위기가 대개 그렇듯 조용하고 내려앉은 공기에 서서히 나는 침식당하기 시작했다. '그래, 이렇게 끝나가고 있는거지' 다음날 수업이 있든 말든 야밤에 친구들과 한강으로 놀러가던 날들도,눈에 잘 띄는 곳을 차지하기 위해 캠퍼스 곳곳에 숨어있다 땡하는 종소리와 함께 선거 자보를 붙이던 밤들도, 종점을 향해 달리는 마지막 버스처럼 끝나가고 있는거지. 냄새 따윈 추억이 타고 남은 재에 불과한거야.
그렇게 생각하자 목이 타고 답답해서 숨을 쉬기 조차 힘들게 됐다. 달밝은 날의 조울증은 왜이리도 심각한건지. 어찌됐든 답답한건 사실이었으므로 나는 옆의 창을 있는 힘을 다해 힘껏 열었다. 창은 이상하도록 무거워서 아주 조금 열렸는데, 그 작은 틈으로도 시원한 바람이 순간적으로 와락 쏟아져 들어왔다. 그래, 그 봄냄새를 가득 담은 바람이 말이다. 나는 다시 폐 깊숙히까지 숨을 들이켰고 조금은 위로받았단 느낌이 들었다. 그리곤 서서히 내릴 준비를 했다. 생뚱맞지만 그리 슬프진 않았다. 다음엔 버스의 문을 열고 내리면 되는거야. 벨만 누르면 자동으로 문까지 열리는 간단한 일이지. 그리곤 계단을 내려가면 되는거지. 역시 간단한 일이야.
버스에서 내리자 버스는 정말로 나를 스쳐지나가 버렸다. 그저 나따위 내린건 아무것도 아닌 일이란 것처럼 종점을 향해 내달려 버렸다. 나는 조금 화가 났지만 역시나 냄새가 좋았으므로 한 번 참기로 했다. 그리고 내친김에 뜀발질을 하기로했다. 우선 몸 안에 있는 피곤한, 풀죽은, 찌들린 공기가 완전히 빠져나갈 때까지 크게 숨을 내쉰후 봄의 밤이 내뿜는 공기를 맘껏 들이켰다. 그것은 개나리와 진달래와 벚꽃이 피어날 그 모든 가능성을 담고 있는 공기였다. 그렇게 새로운 공기로 폐가 충만해 졌을때 오른발의 앞꿈치에 강하게 힘을 줬고 드디어 내 몸은 달리기 시작했다. 지친 모습으로 집으로 향하는 고등학생들의 얼굴을 뒤로하고, 옆에 있는 총각과도 비교하지 않고, 미친놈보듯 바라보는 아저씨의 시선도 신경쓰지 않은채 집까지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달렸다. 하늘을 보며 달렸다. 그러면서 생각했지.
'달엔 정말 토끼가 살고 있는 것 같아...'
후훗 -_-
봄이라 즐겁다.
많은 것들이 풋풋한 냄새만 남기곤 지나쳐왔지만, 여전히 나는 봄이되면 그것들을 들이마실 수 있고, 이렇게 달릴 수 있으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밤산책이 가장 즐거운 계절은 봄인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