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옷

2006. 7. 15. 15:02 |
일본에 갔더니 남자들 사이에서도 바지를 내려입는게 유행이었다. 골반아래까지 내려서 팬티가 반쯤은 보이는 정도로 걸쳐 입는다는데, 신주쿠와 시부야, 하라주쿠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찾아봐도 내 눈엔 보이지 않았다. 흐린 날씨 탓인가.

언제부턴가 속옷이 굳이 감추어야할 은밀한 무엇이 아니게 되었다. 여자들이 입는 바지 대부분이 골반에 맞추어져 있어서 허리를 조금만 숙여도 속옷의 상단부분이 그대로 드러난다. 남자들 바지도 크게 다르진 않아서, 그 덕에 팬티 상단부분의 디자인이 세련된 몇몇 브랜드의 속옷이 불티나게 팔리기도 한다.

반면에 여전히 윗섬 사이로 브라끈이 노출되는 것은 그닥 아름다운 풍경이 아닌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여름이면 누드끈으로 교체해서 착용을 하거나 아예 끈이 없는 누드브라를 하기도 한다. 팬티 역시 치마가 들춰져서 노출되는 것은 삼가할 일이 되는데, 이는 오십년전에 마릴린 먼로가 지하철 환풍구 바람에 꺅~하던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같은 팬티라도 위가 보이냐, 아래가 보이냐에 따라 이렇게 다른 것이다.

팬티 중반쯤에 점선이 또각또각 새겨져서, 윗쪽은 '노출가능' 아래쪽은 '노출금지' 이렇게 적혀있는 것도 아니니, 속옷의 노출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인식되는지는 문화적인 부분일게다. 헌디 그 문화적인 부분, 패션이란게 참 아리송하고 자꾸만 변하다보니 다른 사람들은 제껴두고, 나부터도 이중적인 느낌이 들고 만다.

이는 이미 계산된 복장, 즉 애초부터 팬티 윗부분이 두드러지고 그 아래에 바지가 걸쳐져 있는 경우, 그래서 팬티 자체도 하나의 갖춰입은 복장으로 보이는 경우에는 크게 문제가 없다. 그냥 멋지거나 멋지지 않거나. 이때는 속옷도 꼭 겉옷처럼 이쁘게 생긴걸 입는다. 문제는 그닥 계산되지 않은, 그냥 골반에 걸친 바지였을 뿐인데 떨어진 동전을 찾기 위해서 쭈그리고 앉아 팬티 상단부가 노출된 상황일 때 발생한다.

거 참 나름대로 열려있다고 생각하는 내 딴엔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우선은 '칠칠맞다'거나, '헤프다'라는 생각이 들고 만다. 당사자에겐 '별로 신경쓰지 않음'일 뿐인 것이, 나에겐 '관리되지 않음'으로 인식되는거다. 그리고 그런 인식의 밑바닥엔 속옷은 감춰야 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강력하게 깔려있다. 별로 근거도 없는.

헌데 이걸로 끝이 아니다. 그 밑바닥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면, 이 '쯧쯧'하는 눈길 속엔 소프트한 성욕의 충족이랄까 그런게 분명히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니까 자꾸 눈길이 가는거지. 그렇다면 결국 '쯧쯧'하는 교조적인 시선은 이 음흉함을 감추기 위한 위선이 아닐까. 음흉함이란 도덕적 하위가치를 쯧쯧이란 도덕적 상위가치로 덮어버리는 거지. 그래야 나는 도덕적 우위에 서니까.

이래서야 노출되는 쪽 입장에선 이만저만 손해가 아니다. 음흉한 눈빛은 고스란히 받으면서, 도덕적 공격까지 당하다니. 하지만 대부분의 (굳이 가부장적이라는 수식어를 쓰지 않더라도) 남자들이 이러한 것 같고(나만 그런가 -_-), 쯧쯧은 내세우기 쉬운데, 음흉함은 감추기 쉽다. 스스로 인정하지 않으면 되니까.

나도 겉으로는 음흉함은 물론이고 쯧쯧까지 감추고 산다. 둘 다 인정하고 싶지 않으니까. 전자든 후자든 진보적이고 깔끔하고 열려있음을 이미지로 내세우는 스스로에게 맞지 않으니까. -_- 쩝.
허나 가만히 돌아보면, 선입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내가 있다.

그래도 굳이 변명아닌 변명을 해보면, 쌩뚱맞지만 노출된 팬티 상단부 같은건 그닥 섹시하지 않다는거다. 물론 대부분은 섹시하기 위해 그렇게 입는 것이 아니라, 그저 요즘 유행하는 옷들이 그러하고, 그런 유행 속에서는 그 정도의 노출은 그냥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그저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일게다. 하지만 그 '자연스러운' 유행이라는 것이 어떻게 등장했고 확산되었는지를 살펴보면 역시 '섹시함'이라는 코드가 깔려있지 않을까 싶다.
헌데 이 섹시함이란건 은밀함에 그 묘미가 있지 않은가. 때문에 그 되먹지 못한 전족이라는 풍습 속에서 밖으로 드러날 일 없는 중국여인네들의 조그마한 발이 섹시한거고, 깔끔하게 차려입은 셔츠가 갑자기 내린 비에 살짝 젖어 드러난 브라의 뒷라인이 섹시한 거고, 꽉끼는 청바지 땜시 드러난 팬티라인이 섹시한게지.
그런 맥락에서는 뭐랄까, 쪼그리고앉다가 자연스럽게 노출된 속옷은 어쩐지 심심하달까 재미가 없달까 그런거지. 그런데도 길가다 마주치는 이노므 풍경들에 자연스레 눈길이 쏠리니, 뭔가 조금은 억울하기도 하다.
Posted by nar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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