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천

일기 2011. 4. 17. 02:20 |

집에 있으면 왠지 손해보는 것 처럼 느껴지는 날씨라, 자전거를 타고 벚꽃마실을 갔다.
안양천 코스는 간식을 사 먹을 수 없는 것이 단점이긴 하지만, 여의도 보단 사람들이 덜 붐비기 때문에 좀 더 느긋한 기분으로 즐길 수 있어 좋다.

가는 길 중간중간에 놓인 다리에서 천을 내려다보니, 팔 길이만한 향어들이 수백마리씩 떼를 지어 어디론가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인데도 왠지 모르게 군침이 돌았는데, 아마도 어릴 때 외할아버지 성묘를 갔다 돌아오는 길에 들렀던 음식점이 생각났던 것 같다.  그 음식점은 시골 한 가운데에 위치한 기왓집으로, 커다란 정자가 있고 그 앞엔 수영장만한 양식장이 있어 각종 민물고기를 양식하면서 바로 요리까지 했는데, 어린 마음에 제 키만한 향어들이 어두컴컴한 양식장 웅덩이에서 주둥이를 뻐끔뻐끔 내미는 풍경에 꽤 충격을 받았었다. 하지만 새콤달콤한 소스에 담긴 향어탕수육은 너무 맛있어서 유치원 즈음의 기억인데도 아직 가끔 떠오른다. 생각해보니 그때가 외가 친척들이 함께 모여 놀았던 마지막 시간이었다.

안양천에선 같은 팀의 이 차장님을 만났다. 어제 회식을 하다 '서울에서 벚꽃 구경을 하기엔 역시 안양천이 제격이지'라고 마음이 통해서 오늘 각자 마실을 가면 연락해서 만나기로 했는데 정말로 그렇게 되었다. 두 딸을 키우는 와이프를 돕기(?) 위해, 주말이면 이렇게 큰 딸 서윤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오신다 했다. 서윤이는 나에겐 쌀쌀맞게 대하면서, 왠지 와이프는 잘 따랐다. 숙녀에게 이 정도까지 무시받는 것은 그다지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새삼 아저씨의 비애랄까 그런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덕분에 와이프는 서연이에게 맡기고(?) 이 차장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놀 수 있었다.

즐거운 벚꽃 마실을 마치고 돌아온 와이프와 나는, 오랜만의 하이킹을 성공적으로 마친 것에 잔뜩 고무되었다. 그리하여 '밤에는 멋진 곳으로 드라이브를 가는거야.'라고 각자 후속 과제들을 열거하기에 바빴는데, 결국엔 치킨을 시켜 배불리 먹고는 초저녁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그래도 적당히 즐거운 하루였다.
봄은 정말이지 음, 봄인가? 하면 어느새 지나가 버려서, 꼼꼼히 즐겨주지 않으면 억울한 느낌이 드니까.








Posted by nar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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