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카, 개강, 사랑

일기 2006. 3. 3. 13:01 |
최근 안씨네 장남 85년생 현수씨와 불같은 사랑에 빠진 서문학과 박모씨를 오랜만에 뵙다.
이미 박씨의 미니홈은 현수씨 사랑으로 찜질방 불가마럼 뜨거워서, 왠만큼 두꺼운 가죽 아니면 들어갈 용기도 못낼 정도로 후끈후끈할 지경.
오천미터 경기를 못 본 사람은 상대도 하지 않는다는 본인의 말에 따라 자리를 떠야할 것 같았으나, 맛난 샌드위치를 얻어먹기 위해 꿋꿋이 자리를 지켰다.
아, 조금은 당황스러웠던 서문학과 강사님들과의 담소도 있었구나. -_-

이제는 일요모임이 된 금요모임 사람들 본지도 은근 오래다.

그래도 다른 분들은 따로 볼 기회가 간혹 있는데, 여산샘과는 인연이 닿질 않네.
스위스파크로 보드 타러가자고 꼬시는 샘의 제안에 살짝 팅기면서,
샘 보고파요 라고 문자를 보냈다.

갈수록 대상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능글능글해진다.
능청스러우면 참 좋다. 아무렇지도 않게 슬쩍슬쩍 진심을 표현할 수 있으니까.

공부 열심히 하겠다고 마음 먹은 날, 그래서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는 날엔,
하드는 새로운 음악들로 넘쳐나고, 일기장은 빈 곳을 찾기 어려워진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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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책을 사려다 문득 발견한 스피노자의 에티카.
예전에 읽으려고 마음만 먹었던 일이 생각나, 도서관에 들러 빌려왔다.

신, 정신, 정서 등에 대한 정리와 증명, 정의들로 채워져있는데,
번역상의 문제도 있고, 철학용어들이 많아 어렵긴 하지만, 찬찬히 읽어보면 재미있는듯.

이런 구절이 있다.

제 3부의 정리 21은 '연민'이 무엇인지를 설명해주는데, 우리들은 그것을 '타인의 불행에서 생기는 슬픔'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타인의 행복에서 생기는 기쁨이 어떤 명칭으로 불리어지는지 알지 못한다.

참말로 그렇다. 왜 타인의 행복에 대해 느끼는 기쁨을 지칭하는 말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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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버닝버닝.

봄이 오나보다.
수강하는 강의 하나 없는, 엉덩이만 펑퍼짐해질 논문 학기의 시작이지만
꽉 찬 연구실이랄지, 점심 시간이라고 뭉쳐다니는 신입생들이랄지,
인기가 많아 고민이라는 모씨의 해맑은 표정이랄지,
뭐 그런 사소한 것들에서 시작과 설레임이 느껴진다.

마음은 사랑으로 충만하다.
뿌리는 점점 깊어지고, 단단해지고, 그 위로는 햇살과 비가 기분좋게 내리고 있지만,
저 가지 중턱에 새로난 잎들은 오늘도 산들바람에 살랑인다.
그 살랑임까지 사랑스럽다.
아니, 그 살랑임이 있기에 비로소 세상과 함께 호흡하고 있는 사랑임을 느낀다.
Posted by nar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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