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과학 문화 - 여산
글 2006. 6. 28. 00:39 |황교수 문제는 서울대 조사위원회의 과학적 검토를 통하여 많은 것이 조작으로 밝혀졌다. 비록 황교수는 음모론을 주장하지만 전체적인 흐름으로 볼 때 너무도 초라한 것도 사실이다. 더욱이 일반인들이야 그 말의 의미를 잘 모르겠지만, 기술만 있으면 된다는 그의 발언은 같은 교수이자 과학을 하는 입장에서 참으로 충격적이다. 하지만 지금의 황교수 사태를 보면서 비록 황교수가 문제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대표적으로 비난되고 있기는 해도 이번 상황의 책임에 있어서는 국내 과학자 그 누구도 자유롭지 못함을 느낀다. 학문은 사유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유의 결과로서 실용적 기술도 나오게 된다. 학문이란 그 자체로 철학, 윤리 및 실용적인 면을 다 포함하고 있는 종합 체계인 반면, 기술이란 어디까지나 학문적 실용 지식에 근거를 두어 나타나게 되는 결과물이다. 따라서 학문은 지식이 응용된 결과로서의 기술과는 달리 그러한 지식을 얻기 위한 과정도 매우 중요하며,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학문은 과정, 그 자체이기도 하다. 결국 사유를 통하여 나름대로의 진실을 추구하는 하는 과정이 학문이다. 대학원에 입학해 학문의 입구에 선 학생과 학자로서의 교수가 논문 쓰기 위한 실험 결과에 연연해하기보다는 학문이란 무엇인가를 나누면서 어떻게 연구해야 하며 실험을 통해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 가를 고민하는 것이 왜 지금의 대학 사회에서는 안되는 것일까. 바로 이 점에서 지금 학계에 있는 우리 모두가 황교수 사태에 공범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면서 효율적 운용을 이유로 학문적 내용의 산업화와 실용화를 통해 국가 경쟁력에 기여하고 있던 대전 대덕단지의 수많은 정부 산하 연구소를 통폐합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정부는 통폐합되는 정부산하 연구소의 기능을 기본적으로 교육기관인 대학으로 이전시켰으며 이 과정 중에 많은 교수들이 반대했던 BK21이라는 정책을 실행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논문이라는 가시적 결과로써 학문 주체자인 교수를 평가하겠으며 이를 위해 경제적으로 대학원생들도 대폭 지원하겠다는 입장이었다. 그 후 교육과 학문의 기관인 대학에서조차 경쟁력 향상이란 미명 하에 일반 회사나 정부산하 연구소처럼 교수 평가를 교수의 논문 숫자로 평가하고 지급되는 봉급에도 차이를 두게 되었고 이에 따라 대학 연구실은 논문 수를 늘리기 위하여 대학원생에게 실험 기술이나 가르쳐 빨리 결과를 얻어 논문 발표시키는 것이 전부가 되어 버림으로서 더 이상 연구실에서의 학문으로서의 과학적 사유는 없어지게 되었다. 학문을 해야 할 대학원 과정이 마치 효율을 위해 공장에서 일하는 기술자 양성소처럼 되었고, 이제 우리는 논문 숫자라는 효율과 생산성에 허덕이며 스스로 별 볼일 없는 논문이나 생산해내는 기술자 집단으로 변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심지어 어떤 이들은 비슷한 내용으로 여러 편의 논문을 만들어 내는 낯부끄러운 짓도 한다. 결국 학문을 하는 사유의 느긋함과 여유가 대학에서 사라지고 논문 숫자를 늘려야만 하는 지금의 과학 문화 속에서 우리가 상실한 것은 학문으로서의 과학이요, 얻은 것은 기술인지도 모른다. 이번에 학자이자 교수인 사람이 대중 앞에서 기술만 있으면 되지 무엇이 문제이냐 로까지 우리 과학문화는 기술문화로 변질되었다. 많은 학자들이 막대한 연구비 지원의 BK21이라는 달콤한 산업화 기술 장려 정책을 환영하면서 학문을 버리고 돈을 쫓아간 결과, 이제는 논문 많이 써 연구비가 많고 대학원생이 많으면 유능한 교수가 된다. 소위 유능한 교수와 학생이 일주일에 얼굴 한번 보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학문에 대한 교육과 훈련을 위한 스승과 제자간의 개별적 교류가 가능할 것인가? 이것은 대학에서의 본연의 기능을 말하고자 함이지 결코 학문의 엘리트주의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황교수 사태의 공범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학문의 실용화는 소중하다. 하지만 학문에서 사유하는 과정을 가시적 결과가 없다는 것만으로 무능으로 치부하며 실용화되는 단편적 기술만으로 평가하겠다는 우리 사회의 편중된 정책과 잣대로 인해 황교수와 같은 연구자가 등장할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된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황교수의 신화가 만들어져 간 시기와 김대중 정권 이후 BK21이란 정책의 실시 시기가 너무도 동일하게 겹쳐지고 있음은 이를 잘 말해준다. 학문이 있어야 기술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국가 정책에서는 학자를 믿고 느려도 꾸준히 평생 추구해야 할 학문으로서의 사유 과정을 존중하고, 또 그 결과로서 실용화하는 기술, 그 양쪽을 다 장려하는 배려가 필요하다. 정부 산하 기술연구소와는 달리 교육기관으로서의 대학에서 학문을 가르치지 않고 기술만 가르친다면 기술전문학교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지금 과학 정책을 입안하는 이들이 종종 하는 이야기로 삼성의 예를 들면서 비교 우위에 있는 분야의 선택과 집중 투자를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기술에 있어서 맞는 말이지만 학문에 있어서는 맞지 않는 말이다. 기술과는 달리 학문에는 왕도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기본적으로 학자로서 학문하는 즐거움은 사유에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의 과학문화 속에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진정 마음으로부터 느낀다. 학문을 하고 싶다고. 제자들과 학문에 대하여 논하고 과학에 대하여 서로 이야기 나누는, 잘 나가는 능력 있는 과학자 이전에 학문의 길을 선택해서 행복한 과학자이고 싶다. 이제 다시 학문에 대한 배려 없이 대학사회의 산업화를 더욱 강력하게 추진하는 2차 BK21이라는 한쪽만의 정책이 실시되려는 시점에서 그동안 박탈당한 학문하는 즐거움을 생각하면서, 우리 모두를 황교수 사태의 공범으로 만든 씁쓸한 우리의 과학 문화를 되새겨본다. 이것은 결코 황교수 사태 속에서 지금 이야기되듯 단순히 과학계의 연구 과정과 결과에 대한 검증 체계만을 재검토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고 학계에 있는 우리 모두의 과학문화에 대한 반성이 필요한 것이다 http://www.cyworld.com/zarit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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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에 몸을 담았던 학부시절, BK21사업의 시행과 경과(여론들-학내에선 찬반투표도 하고 그랬다.)를 지켜보면서 들었던 여러가지 회의가 계기가 되어 결국은 공대를 떠나게 되었던 것 같다. 전공공부 꽤 열심히 했던 때가 있었고, 재미도 적당히 있었고, 나름 잘하기도 했었는데(물론 일시적이었지만--;). BK21에 대한 담론들, 토론들을 통해 공학에 막연한 거부감을 가지게 된 것 같다. 자연대에 있었으면 좀 달랐을꺼라 생각하는데, 뭐 현실적으론 같았을지도. 이후에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환경문제에 대한 고민까지 더해져서, 공학에 대해서는 꽤 혐오까지 했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떠나고 나니 오히려 애착이 들고, 여러가지 의미있는 점들이 눈에 들어오고 인정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좀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달까. 이젠 연구에 푹 빠져있는 공학자들 보면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
과학철학을 강의했던 김영 선생님이 왜 공대생들에게 그렇게 학점을 퍼주면서까지 자기 수업 듣길 바랬는지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 과학철학이 자연계 교양이 아니라 철학과 교양인게 문제라는 말씀도 절실히 공감이 간다. 나처럼 반감만 키웠던 이, 반대로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이가 아닌, 성찰하는 과학자가 되기위해 철학이 필요한 것 아닌지.
이번 일을 계기로 국내의 과학 문화에 대한 성찰이 담론화 된다면(국가적으로가 아니라, 학계에서라도) 참 기쁘겠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즐겁게 과학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음 좋겠다.
아니, 즐겁게 학문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음 좋겠다.
학교 마크 밑에 쓰여져 있던 글귀
VERI TAS LUX MEA, 진리는 나의 빛
이라던 그 문장 하나에 홀딱 반해가지고
오만 감동 다 받고, 열심히 공부해 보자 다짐하던 때가 있었단 말이지.
요즘도 저 글귀에 뭉클할 때가 간혹 있는데, 환경대학원에서 사과문까지 발표했던 청계천 복원사업 비리, 이번 황교수 건 등으로 학교 마크 밑의 저 글귀가 슬며시 부끄럽다. </td></tr></tbody></tab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