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사회

일기 2005. 3. 24. 09:47 |
이번 주는 한가할 줄 알았는데 여전히 읽을 책과 모임과 숙제가 산더미였다.

너무 유명해서 오히려 읽지 않았던(인용문으로 너무 많이 접하게 되어 내용을 다 아는 것처럼 생각되기 때문에)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를 읽고 있는데, 마음에 와닿는 문장도 많고 생각보다 훨씬 재밌었다.
역시 명저는 명저인 이유가 있는건가.

좋은 책은 생각을 책에 묶어두기 보다는 책을 중심으로 뻗어가게 한다.


과학적 합리성의 탈신비화는 민주화된 과학으로만 가능한가.
합리성이란 용어의 새로운 구성, 가령 사회적 합리성 문화적 합리성이 의미가 있을까, 반합리성 비합리성이 의미가 있을까. 이들을 가로지르는 문화적 대안은 무엇일까.

결국 벡의 <위험사회>는 20년이 지난 현재에 와서는 위해성 평가나 오염물질거동 등 과학적 합리성의 증진에 의해 체제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과학적 합리성을 벗어나는 것들을 학문의 장으로 끌어오고 싶은 욕심, 방법론의 개발이 가장 큰 관심.




재미있었던 문장들.

계급지위에서는 존재가 의식을 규정하지만, 위험지위에서는 반대로 의식(지식)이 존재를 규정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식의 유형, 특히 개인적 경험의 부족과 지식에 대한 의존의 심도이며, 지식은 위해의 규정과 관련된 모든 차원을 감싸고 있다.

오염자 부담원칙. 근대성의 위험은 일반적으로 이 원칙에 따라 적절하게 해석될 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순수’과학의 결백함을 빙자하여 위험 연구자들은 ‘수준높은 인과증명의 기술’을 옹호하며, 이로써 시민의 저항을 막고 인과연계를 증명할 능력이 부족한 초기단계에 저항을 질식사시킨다.

‘나도 모른다’는 말을 대신하여 사용되는 중심적인 용어가 ‘허용수준’이다.(농도 규제에 관해)
Posted by nar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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