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휴가(?)를 마치고 미나가 연구실로 복귀했다.
강남갔던 제비가 박씨 물고 돌아 온 것도 아닌데,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 좋고나. 같은 연구실에 있다보니 종일 얼굴을 마주하고, 못하면 등이라도 마주하고 있게 되는데, 그러다보면 너무 익숙해져서 자연스레 놓치는 부분이 생기게 된다. 다행히(?) 주말에 하루쯤 안 보는 날이 꼬박꼬박 있고, 이렇게 휴가라도 가서 떨어져 있다보면 상대의 소중함이나 매력을 새삼 발견하게 된다. 참 당연한데도 깜박깜박하게 된다. 부재하고야 비로소 소중함을 알게되는건 뻔한 진리고 이제 확실히 알았으니, 있을때 잘해야지라고 매번 생각하지만 깜박하게 되는거다. 마치 한 번 아프면 죽어라 고생하고 다시는 안 아팠으면 좋겠다고 하다가도, 일 바쁘고 일상이 빡빡하면 어디 아파서 하루쯤 푹 쉬고 싶은 것과 같다.(말이 되나-_-) 어쩌면 퀀텀점프처럼 '깨달았다'라고 삶이 송두리째 변화하는건 그렇게 많은 일이 아닌가보다. '깨달았다'라고 느낀 것 중 상당수는 실은 점차적으로 같은 일이 반복되면서 조금씩 알아가는 그런 류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암튼, 안정된 연애라고 해야하나, 짝이 없는 상태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연애를 하는 식의 생각은 나와 굉장히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출발점이 그렇진 않지만 결과적으로는 어떤 의미에서는 비슷한 무언가를 확실히 느끼고 있다. 물론 연애상대라는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대상이라기보단, 구체적이고 유일한 대상이긴 하지만. 아, 복날도 아닌데 치킨의 스킨이 생각나려고 하니 그만. 그러고보니 꽤 덥다.
여러가지 부분에서 마치 다른 고민을 하는 것 같다가도, 어느순간 내가 그리고 있는 이미지는 하나라는 생각이 들고, 대부분의 해결책은 그 이미지에서 파생되어 나온다는 생각이 든다. 어제 일기에 쓴 파도에 흔들리며 둥둥 떠 있는 사이다병도 그 중 하나인데, 이처럼 무언가 진동하고 불규칙하게 흔들리지만 안정되고 그 율동은 즐거워 보이는 어떤 사물의 이미지를 계속 마음 속에 그리고 있다.
아마도 대충 들뢰즈나 니체 책들을 읽으며 마음 속에 그려진 어떤 이미지일텐데, 중요하고 세부적인 부부은 다 까먹고 이미지만 남은 거니까, 딱히 그들의 사상을 담고 있다고 말하기도 그렇다. (그니까 걔네가 생각하는건 그런게 아니야,뭐 이런 비판은 피하고 싶은거지)
그 이미지 속에 포함된건 유연함. 편안함. 불규칙함.but 안정됨. 가벼움. but 진실함. 즐거움. 정도일까.
어쩌면 구체적인 부분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과 관점보다, 이러한 이미지가 미치는 영향이 더 크지 않을까 싶다. 환원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쿤데라가 소설의 기법이란 책에서, 자신의 소설을 이루는 건 대부분 몇 개의 단어라고 이야기 한 적이 있는데(가령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면 '키취' '가벼움' 등등의), 거기에 이미지를 추가해야 되는 것 아닌가 싶다.
강남갔던 제비가 박씨 물고 돌아 온 것도 아닌데,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 좋고나. 같은 연구실에 있다보니 종일 얼굴을 마주하고, 못하면 등이라도 마주하고 있게 되는데, 그러다보면 너무 익숙해져서 자연스레 놓치는 부분이 생기게 된다. 다행히(?) 주말에 하루쯤 안 보는 날이 꼬박꼬박 있고, 이렇게 휴가라도 가서 떨어져 있다보면 상대의 소중함이나 매력을 새삼 발견하게 된다. 참 당연한데도 깜박깜박하게 된다. 부재하고야 비로소 소중함을 알게되는건 뻔한 진리고 이제 확실히 알았으니, 있을때 잘해야지라고 매번 생각하지만 깜박하게 되는거다. 마치 한 번 아프면 죽어라 고생하고 다시는 안 아팠으면 좋겠다고 하다가도, 일 바쁘고 일상이 빡빡하면 어디 아파서 하루쯤 푹 쉬고 싶은 것과 같다.(말이 되나-_-) 어쩌면 퀀텀점프처럼 '깨달았다'라고 삶이 송두리째 변화하는건 그렇게 많은 일이 아닌가보다. '깨달았다'라고 느낀 것 중 상당수는 실은 점차적으로 같은 일이 반복되면서 조금씩 알아가는 그런 류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암튼, 안정된 연애라고 해야하나, 짝이 없는 상태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연애를 하는 식의 생각은 나와 굉장히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출발점이 그렇진 않지만 결과적으로는 어떤 의미에서는 비슷한 무언가를 확실히 느끼고 있다. 물론 연애상대라는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대상이라기보단, 구체적이고 유일한 대상이긴 하지만. 아, 복날도 아닌데 치킨의 스킨이 생각나려고 하니 그만. 그러고보니 꽤 덥다.
여러가지 부분에서 마치 다른 고민을 하는 것 같다가도, 어느순간 내가 그리고 있는 이미지는 하나라는 생각이 들고, 대부분의 해결책은 그 이미지에서 파생되어 나온다는 생각이 든다. 어제 일기에 쓴 파도에 흔들리며 둥둥 떠 있는 사이다병도 그 중 하나인데, 이처럼 무언가 진동하고 불규칙하게 흔들리지만 안정되고 그 율동은 즐거워 보이는 어떤 사물의 이미지를 계속 마음 속에 그리고 있다.
아마도 대충 들뢰즈나 니체 책들을 읽으며 마음 속에 그려진 어떤 이미지일텐데, 중요하고 세부적인 부부은 다 까먹고 이미지만 남은 거니까, 딱히 그들의 사상을 담고 있다고 말하기도 그렇다. (그니까 걔네가 생각하는건 그런게 아니야,뭐 이런 비판은 피하고 싶은거지)
그 이미지 속에 포함된건 유연함. 편안함. 불규칙함.but 안정됨. 가벼움. but 진실함. 즐거움. 정도일까.
어쩌면 구체적인 부분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과 관점보다, 이러한 이미지가 미치는 영향이 더 크지 않을까 싶다. 환원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쿤데라가 소설의 기법이란 책에서, 자신의 소설을 이루는 건 대부분 몇 개의 단어라고 이야기 한 적이 있는데(가령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면 '키취' '가벼움' 등등의), 거기에 이미지를 추가해야 되는 것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