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직

일기 2006. 8. 10. 12:22 |


면접을 보고 나오는 길, 폭염을 가로지르는 어색한 정장 차림의 한 청년은 냉방이 빵빵한 버스에 올라타 비로소 한숨을 돌린다. 긍정적으로 진행된 면접에 다소 만족하며, 앞으로의 회사생활을 머리속에 떠올리는 차군.

매일 아침 여덟시에 출근해서는 일주일 중 절반은 야근을 하고, 휴가라곤 여름의 3일 뿐인데다 주말에도 종종 출근을 해야하는 이 놈의 회사생활.

애서 돌렸던 한숨이 다시 나온다.

무서운 건, 바쁜 일정에 힘든게 아니라, 삭막한 삶에 적응하는 것이다.
늦은 오후의 태양이 비스듬히 비추는 골목의 정감어린 풍경을 잃고, 형광등 불빛 아래의 사무실 책상만을 기억하게 되는 일이다. 사진이 빛에 대한 기억이라면, 나에겐 더이상 사진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지는 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잠을 제외한 일상의 80%이상을 회사에서 보내며 그 안에서 미래와 의미를 찾도록 강요받는 다는 두려움.

일에서 느끼는 보람이라, 기업에서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벌여놓는 일 중에, 한 발짝 떨어져서 내게 의미있는 일이 과연 있을까, 그저 그 많은 시간을 투자한 일이 내게 헛되지 않은 일임을 세뇌할 뿐인 것 아닐까.  팀장이 그러더군. 중요한 것은 우리가 vision을 공유하는 거라고. 근데 공부한 분야에서 일을 하면서, 공부한 것과 반대되는 일을 해야하는 그 묘한 아이러니가 바로 '우리의 vision'이란 것이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마음은 회사에서 하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고 재미가 있을거라고 자기암시하고 있다. 무섭다니까, 적응한다는건. 자기 몸과 마음이 편한 쪽으로 받아들인다는 건.

에효.
단군이래 최고라는 취업난 속에서, 군대와 직장을 동시에 해결하는 주제에 첫출근하는 날이 생각보다 빠르다며 투덜거리는 것은 분에 넘치는 일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출근하기 싫다.

열흘 남았다. 흑. 

환경분야면서 공학보단 정책을 연구하는, 월급은 좀 적게 주지만 칼퇴근하는, 그러면서 병역특례자리가 있는 회사라는건 대한민국에 존재하지 않는걸까. -_-

Posted by nar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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