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마라톤에 참가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상당히 불가사의한 체험이다. 이를 경험하는 것과 경험하지 않는 것과는 인생 그 자체의 색깔도 조금은 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닐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종교적인 체험이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거기에는 뭔가 인간 존재에 깊숙이 와닿는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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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마라톤 하프 코스도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그건 달리기가 끝나면 곧장 해소되어 버리는 그런 종류의 괴로움이다. 하지만 마라톤 풀코스를 끝까지 달리고 나면, 인간이(적어도 나는)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신경에 거슬리는 자잘한 마음의 '앙금' 같은 것이 뱃속에 가득히 남게 된다.

제대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자신이 바로 조금 전까지 극한 상황에서 맛보았던 그 '괴로움 같은 것'과 조만간 다시 한 번 대면해서, 그 나름대로 어떤 매듭이 지어지는 걸 봐야 한다고 느끼게 된다. '다시 한 번 되풀이 해야만 한다. 그것도 좀더 잘할 수 있게 되풀이할 필요가 있다'는 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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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조히즘'적이라고 사람들은 말할지도 모르지만, 결코 그런 것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틀림없이 호기심과 비슷한 종류의 것일게다. 계속해서 횟수를 늘여 가고 한계를 조금씩 올려감으로써 자신 속에 잠재해 있는, 자기가 아직 모르는 것을 좀더 자세히 보고 싶고, 햇빛이 비치는 곳으로 끌어내고 싶다는......

하루키 일상의 여백- 마라톤, 고양이 그리고 여행과 책 읽기 중


한동안 몰아쳤던 하루키 열풍 속에서, 누군가는 하루키는 껍데기 뿐이니 뭐니 했어도, 나는 내 삶에 하루키가 미친 영향을 부인할 수 없다. 그가 진지하게 삶으로 들어왔을 때 나는 대학교 1학년이었고, 거기엔 단지 하루키라는 이름만으로는 포괄할 수 없는 여러가지 기억들과 사람들이 얽혀 있어서, 이제는 빨아도 빨아도 지워지지 않는 오래된 얼룩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말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함을 확실하게 인정하고, 치열하게 그것을 파헤치기 보다는, 블랙박스인 그 자체로 그것의 존재를 드러내준다는 점이, 나는 그의 확실한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Posted by nar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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