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

일기 2005. 6. 26. 08:31 |
언제나 몇가지 화두는 가지고 있는 편이, 쫀득쫀득한 삶을 사는데 도움이 된다.

나의 답이 명확하게 백과사전처럼 정리되는 것은 몇가지 없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어떤 것들은 자연스럽게 (만남과 경험과 깨달음을 통해) 삶 속에 스며들고, 어떤 것들은 문제의식이 흐려지면서 사라지게 된다. 어찌되었건 화두는 변하기 마련인데, 갈수록 그 변화속도는 느려지고 내용은 '내 것'이 되어간다. 이는 아마 내 삶과 생활이 그러하기 때문일게다.

최근의 내 화두 중에 그나마 항상 인식하고 있는 건 두가지 정도다.

하나는 '내부적 윤리의 가치판단 기준은 무엇인가' 인데 이는 깨어있음과 땡김으로 어느정도 정리되었으나, 이는 아직 나의 언어가 아니기 때문에 고민은 계속되고 있다. 아마 보다 나의 언어에 가까운 것은 충실함 혹은 성실함일 것이다. 이러한 기준은 (문화적,사회적 선/악 개념. '사람을 죽이는 것은 나쁜 일이다' 등의) 외부에서 끌어오는 것이 나닌 개개인의 구체적 성실성에 근거한 것이다. 때문에 나의 윤리가 사회의 윤리와 이어지는 끈은 무엇인가, 개별적 상황의 충실함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윤리가 일반적, 보편적 준거를 지닌 윤리와 만나고 대립하는 지점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 이어지는 화두다.

인권의 윤리(인간의 존엄성이 있다는 전제하에 세워진 윤리)와 차이의 윤리(개개인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전제하의 윤리)가 담보하지 못하는 수많은 문제 앞에서, 나는 어떤 윤리를 세울 수 있을까. 또한 나의 윤리는 극단적으로 하나의 취향이며, 어떠한 선험적 객관성없이 결국 이러한 취향들의 대화와 전쟁 속에 사회적 윤리는 완성되는 걸까.  


두번째는 이러한 문제가 좀 더 전공으로 들어와서 '갈등적 상황에서 '이해관계'가 아닌 '개인의 무엇'은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이다. 이해관계는 흔히 경제적이고 집단적인 이익이기에 행정학,사회학의 전통적 분석틀이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들은 개인의 성향과 차이가 이러한 갈등상황에 미치는 영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가령 갈등의 구성원인 공무원들의 가치관에 따라 갈등의 해결에 어떤 성취도의 차이가 나타나는지, 환경문제라면 참여 주체의 자연과의 접촉빈도가 문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에 관한 연구가 있다.

자연과학적 대상이든, 인문사회과학적 대상이든 간에 보든 스케일에 따라 다른 결론이 나온다. 근대적 환원론만이 이를 깨닫지 못했을 뿐. 원자를 보냐 분자를 보냐 유기체를 보냐 종을 보냐에 따라 같은 문제의식에서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고, 한 인간을 보냐, 가족을 보냐, 집단을 보냐, 국가를 보냐에 따라 역시 다른 결론이 나올 것이다. 여기서 나의 문제의식은 바로 이 지점, 스케일이 달라졌을때 다른 결론이 나오게 되는 그 지점에 있다. 두 스케일 사이의 끈은 무엇인가, 양적 차이가 질적 차이로 나타나는 바로 그 지점엔 무엇이 있는가. 라고 하는 것.


쓰고보니 좀 더 재미있는 화두도 많은데, 왜 이런 것들을 늘어놓았나 싶기도 허다. 정작 쓸 땐 안 떠오른걸 어떡해.
Posted by nar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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