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e's That Rainy Day
일기 2006. 5. 5. 16:49 |한동안 비가 내린댄다. 한적한 연구실에서 추적추적한 음악 듣고 있으니 마음이 가라앉는다.
대추리 주민들 소식이나, 수원 비행기 추락사건 등을 접한 탓인가.
기사를 읽다가 에어쇼를 하던 비행기 조종사가 추락 도중, 관람석으로 추락할 가능성 때문에 비상탈출을 하지않고 끝까지 조종석을 잡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는 대목에선, 사실여부를 모르면서도 가슴이 찡해졌다.
만오천명의 공권력이 투입되어서 10시간만에 진압이 완료되었다는 대추리는, 어째 새만금과 부안 핵패기장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여전히 힘이 넘치시는 문정현 신부님도 보이고.
그러고보니 99년 지하철 파업때 학교로 진입해 들어오던 전경들이 생각나기도 한다. 아, 그래. 그날 밤 기숙사 하늘을 맴돌던 경찰헬기의 모터음. 두두두두 하던.
새만금도, 지하철 파업도, 중심이 되었던 사안과 논쟁은 그렇게 희미한데, 얄궂게도 후문을 지날때 버스에서의 검열이 불쾌했다던지, 사수대를 나간 선배가 썼던 마스크가 눈부시게 하얀색이었다든지, 헬기소리와 전경들의 함성이 기숙사의 불안한 공기를 가득 메울 때 기숙사로 대피하는 노조원들을 숨겨주지 말라던 조교의 안내방송이 참 구차하게 들렸다든지, 그날밤 안절부절 못하며 복도를 서성거리다 결심한 듯 밖으로 달려나간 이름모를 학생의 진심어린 표정은 무언가 전하는게 있었다든지, 하는 등의 어떤 인상은 이상하게, 오래, 아주 오래 기억에 남아있다.
기억은 이렇게 논리적이지도, 체계적이지도 않은 뿔뿔히 흩어진 거울조각들로 남아있다. 그러다 어느날 문득 발에 채이는 조각 하나를 들어 얼굴을 비춰보고 이빨 사이에 낀 고추가루를 떼거나 하는 그런 형태로 다시 구성되어 현재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 강도와 중요도는 1차 함수 관계도 아닌채로.
기억한다는 건 뭘까. 끝까지 잊지 않는다는 건 어떤 의미를 가질까. 아우슈비츠와 전태일과 광주를 잊지 않는 건 현재와 미래를 좀 더 바람직하게 할까? 현재와 미래의 '무엇'을 좀 더 바람직하게 할까? 세계를, 국가를,사회를, 당신을, 나를,우리를? 바람직한 나? 그게 뭘까. 바람직한 나는 무엇이며 무엇을 할 수 있는 나일까?
것도 아니면 '바람직한 현재와 미래'가 아닌 기억 자체로써 가지는 의미는 무얼까?
에효. 암튼 대추리 기사를 주욱 훑어보면서, 그 슬픈 폭력의 순간들을 '훑어'보면서, '아, 얼마전이 메이데이였지'하고 문득 깨닫기도 하면서, 그저 멍하게 슬픈 것 말곤 할 수 있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것도 잘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기사들도, 현장에 대한 묘사는 그렇게나 생생한데, 무엇이 잘못되었고 추후에 어떻게 진행되어야 한다는 이야긴 어디로 갔는지. 강제매입이 아니라면, 주민들이 끝까지 땅을 팔지 않겠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른 곳을 찾아야 하나. 용산기지 그대로 둬야 하나.(서울시장 후보들은 용산부지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가지고 침튀기며 이야기하고 있는디)
아, 비온다. 소리 조~타. 비에 관한 어떤 음악도 빗소리만 못하고나.
대추리 주민들 소식이나, 수원 비행기 추락사건 등을 접한 탓인가.
기사를 읽다가 에어쇼를 하던 비행기 조종사가 추락 도중, 관람석으로 추락할 가능성 때문에 비상탈출을 하지않고 끝까지 조종석을 잡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는 대목에선, 사실여부를 모르면서도 가슴이 찡해졌다.
만오천명의 공권력이 투입되어서 10시간만에 진압이 완료되었다는 대추리는, 어째 새만금과 부안 핵패기장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여전히 힘이 넘치시는 문정현 신부님도 보이고.
그러고보니 99년 지하철 파업때 학교로 진입해 들어오던 전경들이 생각나기도 한다. 아, 그래. 그날 밤 기숙사 하늘을 맴돌던 경찰헬기의 모터음. 두두두두 하던.
새만금도, 지하철 파업도, 중심이 되었던 사안과 논쟁은 그렇게 희미한데, 얄궂게도 후문을 지날때 버스에서의 검열이 불쾌했다던지, 사수대를 나간 선배가 썼던 마스크가 눈부시게 하얀색이었다든지, 헬기소리와 전경들의 함성이 기숙사의 불안한 공기를 가득 메울 때 기숙사로 대피하는 노조원들을 숨겨주지 말라던 조교의 안내방송이 참 구차하게 들렸다든지, 그날밤 안절부절 못하며 복도를 서성거리다 결심한 듯 밖으로 달려나간 이름모를 학생의 진심어린 표정은 무언가 전하는게 있었다든지, 하는 등의 어떤 인상은 이상하게, 오래, 아주 오래 기억에 남아있다.
기억은 이렇게 논리적이지도, 체계적이지도 않은 뿔뿔히 흩어진 거울조각들로 남아있다. 그러다 어느날 문득 발에 채이는 조각 하나를 들어 얼굴을 비춰보고 이빨 사이에 낀 고추가루를 떼거나 하는 그런 형태로 다시 구성되어 현재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 강도와 중요도는 1차 함수 관계도 아닌채로.
기억한다는 건 뭘까. 끝까지 잊지 않는다는 건 어떤 의미를 가질까. 아우슈비츠와 전태일과 광주를 잊지 않는 건 현재와 미래를 좀 더 바람직하게 할까? 현재와 미래의 '무엇'을 좀 더 바람직하게 할까? 세계를, 국가를,사회를, 당신을, 나를,우리를? 바람직한 나? 그게 뭘까. 바람직한 나는 무엇이며 무엇을 할 수 있는 나일까?
것도 아니면 '바람직한 현재와 미래'가 아닌 기억 자체로써 가지는 의미는 무얼까?
에효. 암튼 대추리 기사를 주욱 훑어보면서, 그 슬픈 폭력의 순간들을 '훑어'보면서, '아, 얼마전이 메이데이였지'하고 문득 깨닫기도 하면서, 그저 멍하게 슬픈 것 말곤 할 수 있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것도 잘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기사들도, 현장에 대한 묘사는 그렇게나 생생한데, 무엇이 잘못되었고 추후에 어떻게 진행되어야 한다는 이야긴 어디로 갔는지. 강제매입이 아니라면, 주민들이 끝까지 땅을 팔지 않겠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른 곳을 찾아야 하나. 용산기지 그대로 둬야 하나.(서울시장 후보들은 용산부지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가지고 침튀기며 이야기하고 있는디)
아, 비온다. 소리 조~타. 비에 관한 어떤 음악도 빗소리만 못하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