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ckroach

일기 2005. 1. 24. 08:07 |



자다가 벌떡 일어남.
왜 일어났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꿈 때문이었다.
그 내용인 즉슨,

나는 치형이랑 기억나지않는 몇 명(동아리 사람들이 아니었다)이랑
어느 허름한 집에 함께 살게 되었다.
그곳은 방과 방 사이에 벽이 있는 것이 아니라 대나무발이 쳐져있고
바닥에는 짚 같은게 잔뜩 깔려있는 아주 오래된 이층 집이었다.
방은 총 네 개였는데, 정사각형을 정확히 사등분한 것 같은 고만고만한 방이 서로 붙어있었다.
옆 방에는 이미 자리를 잡은 동네 아주머니들이 반상회 같은 걸 하고 있었다.
반상회라고 해도 왁자지껄한 커다란 소리의 데시벨만 남은, 언어라기보단 그냥 소음의 집합이었다.
도저히 사생활은 보장되지 않는 환경이라
이건 좀 심한걸 하며 치형에게 왜 이집을 골랐어?, 하고 물어보았다.
치형이는 '월세가 싸서요' 라고 대답했다.
얼마냐고 물어보니 10만원이랬다. 음, 싸긴 쌌다.
헐 수 없이 체념하고 바닥에 누으려던 차,
바닥이 뭔가 꿈틀거리길래 짚을 확 들춰보았더니,
손바닥만한 바퀴벌레가 후다닥 달려나왔다.

벌떡.

거기서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예전에 은영누나가, 꿈에서도 사람은 자신이 견디는 장면까지만 본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가령 누구는 목이 잘리기 전에 깨고, 누구는 목이 잘리는 동안 깨고, 누구는 목이 잘려나가고 나서 그 목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 까지 보고 깬다는 식의 이야기.
그래서 나는 바퀴벌레를 보자마자 깨어난 것이 조금 쑥스럽게 생각되었다.
어제까지만해도 몽고에 가고싶다며, 자연 속에서 온갖 생명체와 더불어 살아가는 유목적 삶을 꿈꿨었는데 고작 바퀴벌레에 질겁을 하고 깨어나다니. (게다가 바퀴벌레는 그 거대한 날개를 펼치기도 전이었다. 바퀴가 나는 장면이었다면 나는 스스로를 수긍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광경은 정말 무섭다.)

스스로의 가식적이고 허울적 이상을 자책하며 새벽부터 몽상을 하고 있던 차에,
문득 바퀴벌레에대한 공포는 유전자 속에 내재되어있는 것 아닐까하는데 생각이 미쳤다.
빙하기 전부터 존재했던 바퀴벌레는 포유류와 적대관계에 있었고, 힘이 약했던 포유류는 바퀴벌레 떼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것 아닐까. 그래서 진화과정에서 본능적으로 이들을 경계하라는 코드가 유전자 속에 삽입된 것이다. 어릴때 바퀴를 많이 접하지 않는 이들에게 이 코드가 발동되지 않지만, 성장환경에서 바퀴와 접하게 되면 잠재된 코드에 불이 들어오며 선조들의 공포를 각성하게 된다는 식의 시나리오.

음. 역시 위안이 안된다.
암튼 거대한 바퀴벌레는 인식론적으로라기보단 존재론적으로 무섭다고나 할까.


ps. 위의 그림 ms가 유포시킨건가?   출처 못찾음.
Posted by nar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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